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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Absentee, Attendee, Invitee

오민

소리와 음악, 연주와 청취, 더불어 시공의 관계를 묻는 작업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듣기 어려운 소리, 혹은 나지 않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음악의 재료, 조건, 나아가 음악의 정의에 대한 문제와 곧장 얽히는 이 질문과 함께 이 책은 긴 여정을 떠난다. 오민 작가의 전작 『스코어 스코어』가 일곱 명의 예술가와 대화를 통해 여러 스코어 안팎을 오가며 그 기능과 역할, 정체를 탐구했다면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는 그동안의 질문이 체화되고, 실행 과정을 거쳐, 이 모든 것을 위한 스코어로 귀결되는, ‘실전’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부재자」는 오민이 작곡가 문석민과 함께 그 한계까지 밀어 붙이며 음악의 재료와 구성, 조건을 탐구한, 시청취를 위한 스코어로 다시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데이비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둘째, ‘앤’은 있는 것으로 가정될 뿐 실제 발생하지 않을 소리에서 출발한다. 셋째, ‘케빈’은 다른 소리를 통해 유추해 들어야 하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넷째, ‘나탈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잘 들리지 않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다섯째, ‘데이비드, 앤, 케빈, 나탈리, 그리고 아리스티드’는 이 모든 것이 엮여 총체적으로 듣기 어려워진 소리에서 출발한다. 오민과 문석민은 각 부분의 출발점이 되는 ‘재료’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잠재성이 있는지 대화하고, 자신들이 처한 곤란(이자 흥미진진한 모험)을 타계할 전략을 찾고, 그것이 가능한지 실행한다.

「참석자」는 「부재자」를 통해 만들어진 스코어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연주가 곧 청취가 되는 이 영상에서 시간의 의미, 영상 속 시간의 구성, 기록된 시간과 ‘지금’ ‘여기’에 흐르는 시간의 차이는 물론, 세트, 소품, 의상, 장비, 연주자의 숙련도, 리허설 과정 등 영상 기록을 위한 모든 것이 질문의 대상이 된다.

「초청자」는 「참석자」의 설치를 전환하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이를 위해 안무가 조형준과 함께 안무의 조건을 처음부터 되묻는다. 안무의 주재료로 인식되는 신체부터, 그 신체를 둘러싼 무대, 환경, 시간과 공간 구성, 빛, 공연 도중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 그로부터 발생하는 위험까지 여기에 포괄된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공연의 모든 요소가 그 공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안무로 환경을 조성한다기보다 환경이 안무하는 상황”이다.

이와 별도로 「알렉세이」는 「부재자」를 “관통하는 개념을 음악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변태시키는 실험”으로서, 평소 인식하거나 인지하기 힘든 소리, 움직임, 이미지를 다루기 위해 눈과 귀를 훈련하기 위한 스코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스코어. 또는 미래를 위한 스코어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를 위해 작가와 작곡가, 안무가는 수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스코어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는 이 모든 스코어의 기록성을 의심한다. “어떤 기록이 견고하게 확정된 ‘무언가’를 지시하길 의도할 때 그 기록이 지시하는 ‘무엇’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지시된 그대로 발생하는 것은 가능한가? 기록이 언제나 확고하게 고정된 결과를 보장할까?” 마지막에 실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스코어. 또는 미래를 위한 스코어’는 이러한 기록의 불확실성과 그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나온, 미래의 어느 시점을 위한 기록이다.


발췌

지금 우리는 ‘듣기 어려운 소리, 혹은 나지 않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긴 여정을 떠나려 한다. 출발하기 전에 각자의 출발지와 이동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협업을 경험하면서 분야마다 또 사람마다 같은 단어를 미세하게 혹은 판이하게 다른 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목격해 왔다. ‘매체’, ‘협업’, ‘연출’, ‘프로덕션’, ‘수행’, ‘시간’, ‘공간’같이 자주 쓰이는 단어일수록 더 다양한 의미로 흩어져 있는 듯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듣기’, ‘듣기 어려움’, ‘소리 내기’, ‘소리’, ‘음악’, ‘작곡’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어야 견해차가 생겼을 때 조율을 시작할 근원지를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진부한 질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8쪽)

쉼표로만 작곡된 곡에서는, 구성을 읽되 소리 내지 않는 수행이 곧 연주가 된다. 구성을 읽는다는 것은, 맺고 끊고 지속하고 연결하고 느려지고 빨라지는 등의 감각을 인지한다는 의미다. 낼 소리가 없다고 해도 곡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신체 상태는 분명 변화를 지속한다. 감각을 인지하는 흐름에 따라 숨을 쉬거나 몸을 움직일 것이고, 이때 분명 소리가 발생할 것이다. 이 소리는 우연히 발생한 잡음과는 다르다. 연습 과정에서 반복되는 몸짓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축된 소리에 가깝다. 연주자 몸에 축적된 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엔 음악의 구성도 반영된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한 소음인가, 혹은 음악의 재료인가? (38쪽)

몇 년 전 줄리아 울프의 「릭」(1994) 악보를 대여했을 때도 이미 다른 연주자의 연필 메모가 적혀 있는 상태였다. 악보를 읽으며 음악을 분석하던 중 누군지도 모르는 제삼자가 그려 넣은 흐릿한 연필 선을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는데, 이미 연필 선을 마음에 담은 후에는 정말 그 해석에 동의하는 건지 가장 먼저 본 것을 엄마라 믿는 아기 오리의 마음이 된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악보에 적힌 메모가 음악 해석에 영향을 준다면, 그 악보는 손상된 걸까? (42쪽)

음악의 청취는 소리를 감각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서양 음악의 관습에서 듣는 것은 곧 읽는 것이다. 먼저 재료를 알아채고 그 재료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인지해서 전체 러닝 타임이 만드는 구조를 파악한다. 조금 더 지독한 예를 들자면, ‘청음’에서는 분명 소리를 귀로 들었고 그 음을 목소리로 따라 낼 수 있어도 정확한 음표로 옮겨 적을 수 없다면 ‘들은 것’이 아니다. 즉, 음악인에게 듣는다는 건 단지 소리를 귀로 감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부터 정보를 판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선 연주자의 미세한 표정과 움직임 등 매우 제한된 자료만으로는 음악을 유의미하게 읽는 단계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대 음악이 연주될 때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됨에도 불구하고 그중 얼마큼의 정보가 실제로 읽히고 있는지도 함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48쪽)

네거티브 소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물리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소리일 것 같다.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포지티브 소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여야 한다. 들리지 않지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보이는 것에 연결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피아노에 대입해 보자. 피아노 건반을 눌러서 나는 소리가 포지티브 소리라면 건반을 누르지 않아 나지 않는 소리가 네거티브 소리가 된다. (58쪽)

연주자 역시 소리가 나기 전에 먼저 듣지만, 지휘자는 그보다도 한발 앞서 더 먼저 듣는다. 지휘자가 마음으로 미리 들은 소리를 연주자에게 신호하면, 연주자는 그 신호와 함께 마음으로 미리 듣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소리를 낸다. 지휘자는 그 결과로 발생하는 소리를 귀로 다시 듣는다. 귀로 들은 소리는 아직 나지 않은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모든 과정은 연쇄 반응한다. 따라서 지휘자가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거나 연주자에게 신호하기 어렵다면, 소리를 미리 듣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리를 미리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휘자가 연주자보다 매번 앞서가기도 어려워질 거라 가정한다. 지휘자가 앞서가기만 할 수 없는 환경, 이것이 혹시 연주에서 발생하는 일방적 흐름을 양방적 흐름으로 뒤집을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이 가정은 결국 이 음악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소리의 관계’보다 ‘소리 이전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94쪽)

20세기에 이르러 조성이 무너지자 자연과 관습의 협력으로 음악 내에 틀을 잡았던 감각 체계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감각이 흔들릴수록 이성에 더 의지했던 것일까? 동시대 음악에는 한층 더 복잡해진 이성만 남겨진 듯 보였다. 작곡가들은 여전히 청취자와 소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악보를 보지 않고 ‘구조적 청취’ 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청취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게 들리기도 한다. 어느새 음악은 극도로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으로 변모한 듯했다. (110쪽)

음악이 듣는 것에서 볼 수도 있는 것으로 변모하는 것은, 동시대 음악에서 흐릿해진 보편적 감각을 시각으로 보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한다. 보편적 감각이 보충되면 자연스레 음악의 가독성을 개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의 가시성이 반가운 이유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소리-움직임-이미지가 본래부터 하나였던 원초적 상태, 다르게 말하면, 음악이 무용일 수도, 무용이 음악일 수도, 음악과 무용이 미술일 수도 있는 상태로 안내하여, 이 세 분야의 공동 언어를 연구하는 중요한 원천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몸’을 만나 ‘움직임’과 ‘공간’을 생성하고 ‘이미지’와 ‘소리’를 남긴다. 시간을 재료로 하는 음악과 무용과 미술은 이 요소들과 관련한 근본적인 질문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긴밀하게 엮일 수 있다. (116쪽)

(창작자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완결되지 않은 (혹은 완결될 수 없는) 결정을 담는 공연의 스코어는 어떤 형식으로 기록되어야 할까? 나는 2017년 『스코어 스코어』를 탈고하며 일단락 지었던 스코어에 관한 질문들을 다시 펼쳤다. 스코어는 무엇을 기록하는가? 누가 언제 어떻게 기록하는가? 언제 어떻게 누가 읽을 수 있나? 언제 누가 어떻게 작동시키는가? 스코어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 질문들에 관한 답 역시 하나로 결정될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스코어냐에 따라 그 답은 매번 달라질 것이다. 문득 물을 때마다 답이 달라지는 질의응답에서는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은 분명 닫혀 있는 무언가를 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문을 여는 동시에 열리는 방향 또한 특정한다. 기록이 ‘확정된 어떤 것을 지시한다’는 착시를 상쇄하면서도 작품이 향하는 특정 방향을 예민하게 가리킬 방법을, 질문하는 것 자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4쪽)


차례

협업을 위한 스코어
시청취를 위한 스코어, 또는 창작을 위한 스코어
콘셉트, 디렉션을 위한 스코어, 「알렉세이」
수행을 위한 스코어
기억 또는 추측을 위한 스코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스코어. 또는 미래를 위한 스코어


저자 및 협업자 소개

오민
미술가. 미술과 음악과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영상과 라이브 공연이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한다. 시간이 촉발하는 불안의 감각과 운동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구체적인 장면과 추상적 사유의 경계 및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서울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1998)와 그래픽 디자인(2000)을 전공하고,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2008)를 받았다. 그의 작업은 독일 모르스브로이 미술관(레버쿠젠, 2020),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서울, 2019, 2017), 포항시립미술관(2019), 아트선재센터(서울, 2018), 아텔리에 에르메스(서울, 2018),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8),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18, 2014), 드 메이넨 미술관(시타드, 2018), 대구시립미술관(2017), 두산갤러리(뉴욕, 2017 / 서울, 2016), 아르코미술관(서울, 2017, 2016), 국제갤러리(서울, 2016), 수원시립미술관(2016), 백남준 아트센터(용인, 2015), 독일 에르푸르트 미술관(2011) 등에서 전시되었다. 네덜란드 국립미술원과 삼성문화재단 파리 국제 예술공동체에서 거주 작가로 활동했으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2017), 송은 미술 대상 우수상(2017), 신도 작가 지원 프로그램(2016), 두산연강예술상(2015) 을 수상하였다. 현재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서울과 암스테르담에서 작업하고 있다.

문석민
작곡가. 일반적인 악기 소리부터 다양한 소음까지 감각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발굴하고 또 그 소리 재료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최근에는 미술가, 안무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비음악적인 재료를 음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Sound on the Edge), 미국(Mise-En Festival), 이탈리아(Contemporanea 2018), 독일(Weimarer Frühjahrstage), 리투아니아(Festivalis Druskomanija) 등에서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MDI 앙상블, 네오 콰르텟, 트리오 캐치, 앙상블 TIMF 등에 의해 연주되었다.

조형준
안무가. 공간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연을 만들어 왔다. 건축가 손민선과 함께 뭎[Mu:p]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작으로는 「팝업, 게릴라, 파르티잔」(2020), 「{Open set}⊂Phenotype」(2020), 「데카당스시스템_아플라」(2019), 「{Open set}⊂Phase lag」(2018), 「맑고, 높은, 소리_현장성 감각 인상」(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