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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떤지 / 영상

그게 어떤지 / 영상
Comment c’est / L’Image

사뮈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EH 사진

사뮈엘 베케트의 『그게 어떤지 / 영상』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총 3부로 구성된 「그게 어떤지」(1961)와 그 일부가 변주된 「영상」(1988)은 베케트의 작품들에 드러나는 상호텍스트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글이다.

인용이라는 글쓰기

“그게 어땠는지 내가 그대로 전하자면 핌 전에는 핌과는 핌 다음에는 그게 어떤지 세 개의 파트 나는 그걸 들리는 대로 말한다”(본문 11쪽)

도입부에서 드러나듯이 『그게 어떤지』는 인용의 방식으로, 문장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텍스트다. 그러나 이 인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신뢰를 주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화자의 분열, 인용자의 실수, 건망증, 주의력 결핍, 거짓말… 이렇게 믿음을 저버리며 기존의 권위를 탈피하는 인용은 파편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통해 글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시켜 간다. 통사는 붕괴되어 있다. 대문자와 문장부호가 존재하지 않기에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디서 끊기는지 알기 어렵고,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옮긴이는 이를 “결정 불가능한 다양한 가능성들이 나열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하며, 이러한 새로운 인용과 파편의 글쓰기를 “텍스트의 실존과 구조를 보여 주는 하나의 글쓰기 양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가능한 한 한국어로 번역해 보려 시도했다.

『그게 어떤지』에서의 인용은 ‘나’라는 인물이 자신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는 통로가 되는 식으로 이뤄진다. 목소리가 나의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말하고 나는 목소리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방식. 그러면서 그간 일반적인 인용이 쌓아 온 권위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결정 불가능성으로 인한 가능성과 무지, 반복과 순환,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의 공존이 만드는 역설 등이 드러나면서 이 글에서의 인용은 혼동을 야기하는 글쓰기의 조건이 된다. 베케트는 이렇게 인용을 변질시키면서 화자를 분열시키고 텍스트를 중첩시켜 텍스트들 사이의 상호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호텍스트성으로서의 인용을 보여 준다.

상호텍스트성, 무한한 계속을 향한 움직임

베케트에게 창작은 기존의 글쓰기들을 다양하게 조합하고 변형시키면서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 나아가 글쓰기들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이러한 작업은 상호텍스트성으로 설명된다. 대표적인 예로 이 책에 함께 실린, 베케트가 『그게 어떤지』 집필 도중 잡지에 발표했고 『그게 어떤지』가 출간된 지 27년 후인 1988년 출간한 단편 『영상』은 『그게 어떤지』의 한 에피소드를 책으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유사하지만, 면밀히 비교해 보면 다소 다르다. 『그게 어떤지』가 여러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문자로 시작하는 반면 『영상』은 단락이 나뉘어지지 않고 대문자로 시작하고, 『그게 어떤지』에 부재하는 문장부호가 『영상』에는 존재하며, 간혹 구절이 추가되어 있기도 하다. 즉 『그게 어떤지』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일종의 다시 쓰기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변형된 반복을 두고 베케트가 작업을 계속하는 방식이자, 끝을 연기하는, 끝나지 않게 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베케트의 문학은 이렇게 상호텍스트성의 방식으로 무한히 계속되는 문학이 된다.

이 밖에도 『그게 어떤지』에는 산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 리듬을 구성하는 단어들, 칼리그람적 측면 등 시적 면모와 더불어 대화와 극 속의 극 형식을 통해 희곡적 면모 또한 드러난다. 『그게 어떤지』는 소설을 넘어 이러한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면서 독자가 관습적이고 수동적인 독서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독자가 시각과 청각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텍스트와 주체적으로 관계 맺도록 이끄는 움직이는 텍스트이다.


발췌

그게 어땠는지 내가 그대로 전하자면 핌 전에는 핌과는 핌 다음에는 그게 어떤지 세 개의 파트 나는 그걸 들리는 대로 말한다

목소리 먼저 밖에서 까까 사방에서 그러고는 헐떡임이 그치자 내 안에서 어디 나한테 또 말해 봐 아니 이제 좀 그만 말해 간구

지난 순간들 다시 떠오르는 오래된 몽상들 아니면 스쳐 떠오르는 것 같은 풋풋한 몽상들 아니면 사물 언제나 사물 그리고 추억들 나는 그것들을 들리는 대로 말한다 진흙탕에서 그것들을 속삭인다

내 안에서 밖에 있었다가 헐떡임이 그치자 오래된 한 목소리의 파편들이 내 안에서 내 목소리는 아니다
(「그게 어떤지」, 11쪽)

잘 못 말해진 잘 못 들린 잘 못 기억된 그렇게나 많은 다른 것들 그것들 중에서 특히나 그 모든 건 잘 못 주어진 잘 못 받아들인 잘 못 되찾아진 잘 못 반환된 많고 많은 단어들의 흔적 그저 흰색 위의 흰색이 되기 위한 것일 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누구한테 귀를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 대한 관심을 알아내는 재능이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라 왜 그게 뭐 어때서
(「그게 어떤지」, 143쪽)

혀가 진흙 범벅이다 이런 일도 생긴다 이럴 때 유일한 해결책 혀를 다시 입안에 넣고 돌리기 진흙을 그걸 꿀꺽 삼키거나 다시 뱉기 질문 진흙에 영양가가 있을까 그리고 가망성들 잠시 그 상태로 있기

나는 입안을 진흙으로 가득 채운다 이런 일도 생긴다 이것도 내 자원들 중 하나니까 잠시 그 상태로 있기 질문 진흙을 삼키면 그게 내 양분이 될까 그리고 열린 가망성들 좋은 순간들이다

진흙탕에 분홍색 혀 혀가 다시 나온다 그사이에 손들은 뭘 하고 있을까 손들이 뭘 하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항상 살펴봐야 하고 살펴보려고 해야만 한다 자 그럼 왼손은 우리가 본 바로는 자루를 계속 움켜쥐고 있다 그러면 오른손은

오른손은 내가 눈을 감는다 파란색 눈 말고 뒤에 다른 색 눈 그러다 결국 그 손을 흘끗 본다 저기 오른쪽에 있는 손 쇄골 축을 따라 최대한 길게 뻗은 팔 끝에 있는 손을 나는 그걸 들리는 대로 말하는 거다 펴졌다 다시 오므려지는 진흙탕에서 펴졌다 다시 오므려지는 오른손 그것도 내 자원들 중 하나다 그게 내게 도움이 된다
(「그게 어떤지」, 33–4쪽)

혀가 진흙 범벅이다 이럴 때 유일한 해결책 혀를 다시 입안에 넣고 돌리기 진흙을 그걸 꿀꺽 삼키거나 다시 뱉기 진흙에 영양가가 있는지 알아보는 문제와 가망성들 사실 물을 자주 마실 필요는 없지만 나는 진흙탕 물을 한입 가득 물고 있다 이것도 내 자원들 중 하나니까 입에 문 채로 한동안 있는다 진흙을 삼키면 그게 내 양분이 되는지 알아보는 문제와 열린 가망성들 기분 나쁜 순간들은 아니다 애를 써 보는 게 중요한 거니까 혀가 다시 나온다 진흙탕에 분홍색 혀 그사이에 손들은 뭘 하고 있을까 손들이 뭘 하는지 항상 살펴봐야 한다 아 그래 그럼 왼손은 우리가 본 바로는 계속 자루를 움켜쥐고 있다 그러면 오른손은 아 그러니까 오른손은 잠시 후에 나는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아니 이런 자세가 가능하다면 쇄골 축을 따라 최대한 길게 뻗은 팔 끝에서 바로 거기서 펴졌다 다시 오므려지는 진흙탕에서 펴졌다 다시 오므려지는 그 손을 보게 된다 그런 동작도 내 자원들 중 하나다 그런 작은 동작이 내게 도움이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그래도 꽤 도움이 되는 자잘한 비법들을 가지고 있다
(「영상」, 173쪽)


차례

그게 어떤지
영상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89)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전승화는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논문 「‘움직임’을 통해 읽은 베케트의 『몰로이』」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파리 7대학에서 에블린 그로스만의 지도하에 박사 논문 「사뮈엘 베케트 작품 세계에서 드러나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집필했다. 옮긴 책으로 질 들뢰즈의 『디알로그』(허희정 공역)와 사뮈엘 베케트의 단편집 『첫사랑』, 장편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그게 어떤지 / 영상』이 있다.

표지 사진

EH(김경태)는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다.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공부했다.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 『로잔 대성당 1505–2022』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