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

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
Diagrammatic Writing

조해나 드러커 지음, 최슬기 옮김

형식은 어떻게 공간에서 의미를 품는가

『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는 형식이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는지 시적으로 설명한다. 실험 타이포그래피로 널리 알려진 조해나 드러커는 문자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뿐 아니라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소유물을 표시하고, 농업 주기를 기록하고, 계산을 하고, 천문 현상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여러 문자 기호가 발명됐지만, 이를 통한 글쓰기의 등장만큼 인간의 소통 능력을 대폭적으로 확장한 사건은 없었다.



2006년에 미술 기획자 겸 편집자 프리크 롬브(Freek Lomme)가 설립한 출판사 오노마토페(Onomatopee)에서 처음 펴낸 이 책은 바로 ‘책’이라는 형식을 빌려 문자의 두 가지 측면, 즉 소통의 기능과 상징의 개념 두 영역을 아우른다. 이처럼 책이라는 매체를 의미 생성 관계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연구한 작품은 드물다. 이 책에서 글과 그 시각적 표현은 완전히 통합되어 상호 의존적으로 서로를 반영한다. 한편, 형식이 지닌 의미를 이용하는 글쓰기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목표다. 공간 속, 또는 위에서 실험적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는 자신과 상대를 지시하며 대화를 나눈다.



프랑스의 문화 이론가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는 1987년 펴낸 『문턱(Seuils)』에서 ‘파라텍스트(Paratext)’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그렇게 책은 본문과 본문이 아닌 것으로 나뉘고, 본문이 아닌 것은 그것이 안에 있는지, 또는 밖에 있는지에 따라 다시 나뉜다. 하지만 1쪽의 “첫머리에 배치된 말은 공간을 규정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주네트가 그은 경계를 여러 층위로 나누고, 어떤 층위는 더욱 분명하게, 어떤 층위는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질문이 쏟아진다. 무엇이 제목이고, 무엇이 제목일 수 있는가. 무엇이 본문이고, 무엇이 본문일 수 있는가.



이제껏 대체로 형식이 내용에 봉사해왔다면, 이 작은 책이 다진 공간에서는 형식이 내용과 어깨를 견준다. 책, 더 세부적으로는 글쓰기, 편집, 조판 등에 관해 곱씹을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저술가, 서지학자, 디자이너, 개념 미술가는 물론 그래픽 형태를 띠는 다이어그램을 사유케 하는 메타언어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익하다.




발췌

“본문은 머리글과 연관해 읽힌다. 여기서 머리글은 위에 이미 등장했고, 그럼으로써 포괄적 주제 또는 담론의 틀에 자리 잡았다. 머리글은 책을 읽는 독자를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 역할도 하지만, 페이지에서 차지하는 위치 덕분에, 어떤 기준틀을 창출하기도 한다.” (7쪽)



“글줄 들여 짜기 값을 바꾸면서 동시에 글자 크기도 바꾸면, 단락 사이의 종속 관계는 더욱 뚜렷하게 표현된다. / 글줄을 한 단계씩 들여 짤 때마다 본문은 점차 더 자세한 논증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를 뒤덮듯 공간을 점유하는 첫 문단이 괄호가 되고, 그 안에서 상세 설명이 이우러지는 듯한 모양이다.” (14쪽)



“큰 글자는 진술의 권위를 드러낸다. 이 글은 심지어 자신에게 틀 지우는 글마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다.” (15쪽)



“이 책은 철저히 자기 자신에 관한 책이 되는 데 최대한 근접한다.” (32쪽)


지은이



조해나 드러커(Johanna Drucker)는 실험 타이포그래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이자 작가다. 책과 현대 미술, 그래픽 디자인, 디지털 미학의 역사를 강의하고 연구하며 다양한 책을 써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문헌정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이

최슬기는 1 : 1 다이어그램을 탐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파트너 최성민과 ‘슬기와 민’으로 활동한다. 옮긴 책으로 『트랜스포머: 아이소타이프 도표를 만드는 원리』(2013)가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