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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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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듀티
ヘビーデューティーの本

고바야시 야스히코 지음 / 황라연 옮김

패션을 넘어 일상에 ‘헤비듀티’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고전 중의 고전

계절이 바뀌고 패션계에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그리고 그 아이템이 무엇이든 어딘가 튼튼하면서 기능적이라면, 홍보 문구에 ‘헤비듀티’라는 말이 붙곤 한다. 일본식 아메리칸 캐주얼을 뜻하는 ‘아메카지’나 ‘워크 웨어’ 같은 말과 함께 따라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껏 한국에서 헤비듀티는 유래와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유행어처럼 소비돼왔다.

이 책의 지은이인 고바야시 야스히코(小林泰彦)가 패션계에서 사용하기 전까지 헤비듀티(heavy-duty)는 그저 ‘튼튼한’이라는 뜻을 지닌 일반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1975년부터 패션 잡지 『멘즈 클럽(Men’s Club)』에 「’진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연재물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뜻을 넘어섰고, 이듬해인 1976년 「헤비아이당 선언」을 발표한 뒤 헤비듀티는 물건의 본질을 근거로 하는 것,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 필요하면서 충분한 것, 튼튼하고 기능적인 것, 한마디로 ‘진짜’가 됐다.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물건을 고르는 눈을 길러 고쳐서 오래 쓰자

이 책은 지은이가 『멘즈 클럽』에 연재한 헤비듀티와 관련된 연재물을 보강해 한데 엮은 것이다. 헤비듀티의 유래를 시작으로 지은이가 전 세계를 취재하면서 고르고 고른 ‘진짜’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재킷, 셔츠, 바지, 신발, 백팩, 모자 등 그 범위는 우리가 몸에 걸치고 주머니에 넣기도 하는 모든 물건과 그 물건을 이루는 온갖 소재를 망라한다. 한편, 계절별로 이런 물건을 어떻게 조합하는 게 ‘진짜’다운지, 물건들이 처음 만들어진 현지에서는 어떻게 사용돼왔는지까지 세세히 밝힌다. 온갖 ‘진짜’들이 범람하는 오늘날 이 책은 독자에게 무엇이 ‘진짜’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권한다. 이왕이면 ‘진짜’가 좋다고, ‘진짜’라면 낡고 해져도 그냥 고쳐 쓰면 그만이라고 말이다.

실용성의 매뉴얼: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까지

시작은 패션이었지만 헤비듀티가 일상으로까지 빠르게 침투한 것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헤비듀티를 통해 일상에서 별 다른 고민 없이 사용해온 물건들의 유래를 찾게 된 것은 물론, 실용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게 됐다. 한마디로 ‘실용성의 매뉴얼’로서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의 기본적인 욕망을 건드리고, 나아가 그런 물건을 고르는 안목까지 길러준 셈이다.

패션이나 스타일을 넘어 일상이 되면서 헤비듀티는 생산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헤비듀티는 트렌드와 무관하게 반드시 숙지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팔든 무조건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적당한 가격을 붙이는 것 말이다. 유행을 “거리의 패션으로만 소비하고, 새로운 게 나오면 다시 그쪽으로 몰려가는 건 이제 완전히 질”려버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동료와 같다.

복각판의 한국어판

패션에서 복각(復刻)은 재현의 실천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PX에 납품되던 청바지를 1980년대 일본에서 원단은 물론이고 방직기, 부자재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복각한 데는 현대 의복의 원형을, 어쩌면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를 재현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 이때 과거와 현대의 간극에서 오는 불편함은 감수하고 즐기는 미덕이 된다.

이 책은 일본 부인화보사에서 1977년에 출간한 『헤비듀티의 책(ヘビーデューティーの本)』의 복각판(2013년, 산과계곡사)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한때 초판은 복각판이 나오기 전까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품귀 현상이 일기도 했다. 지은이는 복각판에서 ‘헤비듀티’라는 개념이 태동해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자 원본에 수정을 가하지 않았고, 한국어판 또한 되도록 그를 따랐다. 40여 년 동안 헤비듀티를 둘러싼 환경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음에도, 그래서 내용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해도 지은이가 복각판 서문에서 밝힌 바람을 되새겨보자. “그러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그냥 웃어주시면 좋겠다.” 헤비듀티의 원형을 더듬는 일일뿐더러 어쨌든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일 테니까.

한편, 하이패션에서 유니클로까지 동시대 패션의 흐름을 예민하게 관찰해온 칼럼니스트 박세진은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이자 산악인인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를 통해 한국인의 눈으로 다시 한번 헤비듀티의 흐름을 정리하고, 헤비듀티가 일상복을 넘어 하이패션까지 침투해온 과정을 살핀다.


워크룸 실용 총서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발췌

헤비듀티는 물건의 본질을 근거로 하는 것,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 필요하면서 충분한 것, 기능적인 것, 한마디로 ‘진짜’다. (15쪽)

한때 ‘양복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청년이 아이비 룩을 거치면서 양복 입는 생활의 본질을 깨달은 것처럼 아웃도어 활동의 본질을 헤비듀티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18쪽)

(백패킹은) 일부 등산에 있는 정복 같은 공격성이나 그 반대에 있는 도피성도 없다. (전체주의나 집단히스테리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다.) 모험 같은 백패킹은 있을 수 있지만 모험이 곧 백패킹은 아니다. (73쪽)

데이 팩은 하루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크기의 어깨에 메는 가방이다. ‘어깨에 메는’이라는 말처럼 데이 팩이 우리 일상에 들어온 건 사람들이 자동차보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를, 시내로 나오기보다 자연으로 들어가기를 떠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80쪽)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해도 괜찮아요. 단 , 헤비듀티는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입고 행동하는 겁니다. (234쪽)

헤비듀티 라이프에는 질실강건이 필요합니다. 아이비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마음만큼은 말씀하셨듯이 물건에 대한 다정함이라고 생각해요. (236쪽)

거듭 말하지만 헤비듀티는 내가 만든 말이 아니다. ‘튼튼한’이라는 뜻의 원래 있던 말이다. 미국에서 나온 카탈로그에서 자주 봤는데, 튼튼하고 기능적인 물건을 소개할 때마다 사용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됐다. 「‘진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부제가 ‘헤비듀티 서베이’여서 언젠가부터 일반적으로 인식됐다. (292쪽)


차례

초판 서문
복각판 서문

헤비듀티
헤비듀티 워드로브
헤비아이 청년의 방
헤비듀티 트래디셔널
헤비아이 코디 목록
헤비듀티 이야기
— 로딩학
— 백패킹
— 데이 팩
— 다운
— 60/40
— 애슬레틱 슈즈
— 신발
— 가죽
— 나이프
— 통나무집
— 헤비듀티 카
— 키트
— 카탈로그
헤비듀티 소재
헤비아이 타운
헤비듀티 브랜드
헤비듀티 브랜드 일람

헤비아이 도감
헤비듀티를 말하다
자주 묻는 질문
헤비듀티 용어집
헤비듀티 비망록

순환의 고리 / 박세진
찾아보기


지은이

고바야시 야스히코(小林泰彦)는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193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사회문화, 여행, 등산, 하이킹 등을 그림으로 옮기며 이따금 기행문도 쓴다. 일본 패션계에 ‘헤비듀티’라는 말을 정착시켰다. 지은 책으로 이 책을 포함해 『세계의 마을』(1970), 『그림책 작은 교토 여행』(1977), 『진짜를 찾아 떠나는 여행』(1983), 『낮은 산 배회』(1984), 『마을 산책 조사단 해외편』(1993), 『옛 도구의 고현학』(1996), 『일본의 낮은 산 100곳』(2001), 『고바야시 야스히코의 수수께끼 비밀 도쿄 산책』(2013) 등이 있다.

옮긴이

황라연은 도쿄 거주 외국인 노동자로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9년 부모님의 파견 근무로 일본 땅을 밟는다. 현지 학교 입학 후 빠르게 일본 생활에 적응, 패션에 눈뜬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한정템을 사기 시작한다. 2004년 귀국 후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입학, 방송 및 통역 일을 하며 학업보다 패션에 열중해 한정판 콜래보 희귀템에 집착하는 시간을 보낸다. 2017년부터 도쿄에 산다.


디자인

김형진, 임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