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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는/다니는 섬(들)
절판

떠 있는/다니는 섬(들)

염중호, 한유주, 현시원, 장클로드 무아노, 강홍구, 서동진, 김태용 지음

작가와 저술가들의 협업을 통한 이미지 해석 프로젝트

이 책은 작가 염중호가 2008년부터 찍어온 300여 장의 사진을, 여섯 명의 초대받은 필자가 창작의 소재로 삼아 쓴 글을 모은 결과물이다. 작가의 요청에 따라 필자들은 인화되지도 않은, 컴퓨터 화면 속을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채집하고, 그에 반응해 글을 썼다. 어떤 이미지를 선택할지는 물론이고 어떤 글을 쓸지도 온전히 필자의 몫이었기에 결과물은 때로는 비평이 되고(장클로드 무아노, 서동진), 시(강홍구)가 되었으며, 픽션(한유주, 현시원, 김태용)이 되었다. 필자들이 선택한 이미지들은 일부 겹치기도 하며, 이 경우 그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된다. 이미지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글도 있다. 이미지들의 내러티브를 내정한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필자들이 많다. 전자도 마찬가지지만, 후자의 경우 작가(이미지)와 필자(텍스트) 외에,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해석과 개입이 추가되었다.

염중호는 이 책과 더불어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리는 전시 「예의를 잃지 맙시다」(2013. 6. 21~8. 10, 사무소 기획)를 통해 작가 및 저술가들과 협업하며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이미지의 해석’이라는 주제를 탐구해나간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오랫동안 이미지의 다양한 해석에 주목해왔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분류되고 해석될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레지스 드브레의 말을 빌자면 한 장의 사진은 50억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나의 이미지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다르게 읽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의미로 재해석될지 떠돌며 기다리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단순한 분류의 차원이 아닌, 이미지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 “무한하지는 않더라도 실제로는 셀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배치와 서사들을 건져내고, 이미지가 하나의 의미와 만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우연을 중첩시킨다. 책의 프랑스어 제목 ‘일 플로탕트(Iles flottantes)’는 직역하면 ‘떠 있는 섬들’이란 뜻으로, 프랑스에서 즐겨 먹는 디저트 이름이기도 하다. 달걀흰자에 설탕과 향료를 섞어 만든 머랭을 섬처럼 띄워 먹는 이 달콤한 디저트처럼, 그것은 무게 없는 언어로 된 목소리들의 중첩이다.


발췌

수면 아래를 짐작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사라진 사물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물결과 파도의 형태를 지켜본다. 바다에 발을 넣을 때마다 나는 여섯 개의 대륙을 떠받친 거대한 바다에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들어 있을지를 생각했고, 발끝에 차가움이 전해졌고, 발가락 사이로 모래나 자갈, 유리 조각이나 갑각류 혹은 패류의 조각들이 파고들었다. 사물들은 유한하고 나는 끝없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한유주, 17쪽)

앞쪽에 있는 사진에서 에메랄드 색 벽지와 민들레와 뒤엉킨 버드나무 풀잎 중에서 누가 더 진짜 같을까. 어느 편이 자연스러울까. 뿌리를 노출시킨 귀염성 있는 나무 이미지와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초록색 플라스틱 물체 중에서 무엇이 나무와 더 비슷할까. 맨 처음 보았던 산수화에서 패널에 붙은 나무 이미지까지.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도시에서 누구도 쉽게 나무가 제 주변에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현시원, 60쪽)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불안정하며 정체성이 결여된, 비대해지기까지 한 이런 이미지의 과잉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쓰이기를 기다리는 온라인상 파일들의 저장, 블로그의 비약적인 발전, 위키와 팟캐스팅의 발달, 그리고 ‘유저’나 ‘구경꾼’, 혹은 ‘소비자’들이 발생시킨 내용물로 웹 2.0 기반에서 탄생한 이미지 공유 사이트들은 모두 각자 다운로드뿐 아니라 업로드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장클로드 무아노, 67쪽)

사진-이미지는 사물을 새롭게 재탄생하도록 하는 데 전무후무한 무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업 사진가인 혹은 예술가-사진가로서의 염중호는 그런 몸짓을 흉내 낸다. 마치 촬영 테크닉은 잘 모른다는 듯이 프레이밍, 현상, 인화, 보정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수다스럽게 혼란스런 사진들을 나열한다. 그러나 그 사진-이미지는 사진에 저항하는 사물 혹은 세계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서동진, 170쪽)

만국의 비닐이여, 그 입 다물라! (김태용, 204쪽)


목차

한유주: 사라진 사물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현시원: 식물관찰도감
장클로드 무아노: 이미지로 무엇을 할 것인가?
Jean-Claude Moineau: Que Faire des Images?
강홍구
서동진: 사진-이미지에 저항하는 사물의 관성
김태용: 비닐리즘 혹은 낙천주의자 염애리


지은이

염중호는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파리 제8대학에서 사진과 이미지 이론으로 석사를, 영화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여러 다양한 예술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이미지의 해석이 작업에서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지 실험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다.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해 많이 전시에 참여했으며, 원앤제이갤러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한유주는 홍익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 단편 「막」으로 제43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희곡과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장르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집으로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등이 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세계문학 강독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텍스트의 경계를 실험하는 문학동인 ‘루’에서 활동한다. 『작가가 작가에게』, 『교도소 도서관』, 『눈 여행자』 등을 번역했다.

현시원은 독립 큐레이터다. ‘13 Balls’(잭슨홍 개인전, 2012), ‘천수마트 2층’(2011 국립극단/2012 페스티벌 봄), ‘지휘부여 각성하라’(2010)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2년에는 라이팅밴드(www.writingband.net)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잡지 《옵.신》 3호의 공동 편집위원이다. 단행본 『디자인 극과 극』, 잡지 《워킹매거진》을 펴내는 등 계속 글을 쓰는 중이다.

장클로드 무아노는 미학과 철학, 수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8대학 미학, 철학과에서 예술 이론을 가르쳤다. 제15회 파리 비엔날레 고문을 맡았으며 저서로 『예술에 대한 무관심 속의 예술(L’art dans l’indifference de l’art)』, 『세계 예술에 반하여, 동일성 없는 하나를 위하여(Contre l’art global, Pour un sans identité)』, 『미래의 회귀(Retour du futur)』 등이 있다.

강홍구는 1956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목포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다시 학생이 되어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한 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로댕갤러리와 몽인아트센터, 원앤제이갤러리,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9년 이후 사진 위에 색을 칠한 「그집 2010」, 「녹색연구 2012」 등의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에는 부산 산동네와 집들을 찍은 ‘사람의 집- 프로세믹스 부산’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부산과 청주, 서울에서 열었다. 지은 책으로는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1, 2권), 『디카를 들고 어슬렁』,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등이 있다. 2006년 올해의 예술가상, 2008년 동강 사진 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우민아트센터, 고은사진미술관 등 여러 곳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동진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고,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디지털콘텐츠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와 문화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크다. 또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를 묻는 이론적인 연구를 하고 있으며, 미술을 비롯한 시각 문화에 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디자인 멜랑콜리아』, 옮긴 책으로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 등이 있다.

김태용은 2005년 《세계의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웹진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 시집 『뿔바지』를 펴냈다. 현재 사운드텍스트 그룹 A.Typist에서 활동 중이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표지: 김형진
본문: 강경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