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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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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비평

이영준

“『기계비평』에서 이영준은 테크놀로지와 테크노컬처, 포스트휴먼의 상황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사유/실천의 새 방향을 제시했다. 인문학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융합적 새 인문·사회과학의 가능성을 실제로 열어 보여준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글쓰기와 비평, 인문학과 기술학 사이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 새로운 비평의 획기적 시작을” 알린 이영준의 『기계비평』이 재출간되었다. 2006년 기계비평이란 분야를 개척하고 그 개념을 정립한 이 기념비적 저작은 이후 기계비평을 다루는 대학의 정규 과목 개설, 학술대회 개최 등의 성과로 이어지며 한국에 기계비평의 싹을 틔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함께 출간된 『기계비평들』(전치형 외 지음, 2019)은 이영준의 “선구적 비평 작업에 동의하거나 그 의의를 좇는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와 성과들”을 엮은 책으로 “이영준의 『기계비평』을 향한 헌정이면서, 2010년대 한국 기계 문화에 대한 뼈아픈 진단을 담고 있다.”

너무 때늦은, 혹은 너무 때 이른 기계비평의 출현

『기계비평』 초판 서문에서 이영준은 기계비평의 근거를 “기계인간의 출현”에서 찾는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기계와 떨어질 수 없는 기계인간, 물론 이런 인간은 출현한 지 오래다.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현대인은 모두 기계를 자기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인 기계인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계인간 출현 이후 기계비평이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기계는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작동과 사용의 대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KTX가 서울역에 도착한 다음의 상황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서울역에 도착하면 자신이 타고 온 열차의 구조와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힘과 장치가 자신을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 만에 옮겨놨는지, 매일 그렇게 다녀도 탈이 없는 건지, 탈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일들을 하길래 그런 건지 전혀 관심이 없다. 재빨리 서울역을 빠져나와 노숙자들을 지나쳐 자기 갈 곳으로 가버릴 뿐이다. 기계비평의 관심은 다르다. 서울역에 도착한 KTX는 고양 행신 차량기지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대접을 받는지, 어떤 식으로 검수(철도에서는 정비를 검수라고 부른다)가 이루어지는지, 차량의 구조에 어떻게 손대는지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즉 기계비평은 일반인이 관심 없는 기계의 속 구조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몇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일반인은 KTX 차량기지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들어간다 하더라도 복잡한 기계의 작동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계비평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건 기계의 물리적, 화학적 메커니즘이 아닌 기계와 기계, 기계와 인간, 기계와 자연이 맞닿는 접면이다. “결국 기계는 인간적, 사회적이고, 인간과 사회도 기계적이기 때문에 기계비평은 오늘날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물들과 그것의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비평의 출현은 때늦은 감이 있다. 기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해하기 어려운 탓이다. 동시에 기계비평은, 즉 기계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여전히 일반인에게 낯선 개념이니 10여 년 전 『기계비평』의 출간은 너무 때 이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기계를 향한 동경에서 인문학적인 사유로

기계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혹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질베르 시몽동, 폴 비릴리오와 같은 사상가들의 저작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홍성욱, 송성수 등도 꾸준히 과학과 인문학, 기술과 사회의 비평적 관계를 모색해왔다. 그러나 이영준이 이들과 다른 점은, 무턱대고 일단 기계 속으로 뛰어든다는 데 있다. 그를 기계비평으로 이끄는 것은 학문적 관심이나 이론적 연구 차원이 아닌, 기계 자체에 대한 동경과 지적 호기심이다. 그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장발달 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로 나누듯이, 대부분의 인간의 성장 발달에는 기계기(machinic stage)라는 단계가” 있는데, 그가 기계비평가가 된 까닭은 그의 성장기에 형성된 이 기계기가 여러 부침을 겪다가 마침내 기계비평이라는 형태로 발현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기계기’는 ‘기계비평’과 마찬가지로 이영준이 명명한 용어다.)

그는 기계라는 복합체를 조망하고 그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결국 불가능함을, 그가 바라본 테크노스케이프는 일부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찾아다니며 이에 대한 비평을 인생의 낙이자 업으로 삼는다. 결국 이 책에 실린 거대한 컨테이너선, 디젤기관차, 비행기, 항구 등에 대한 비평과 성찰이 일반 독자는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은 까닭은 그가 직접 체험하고 겪은 경험이, 기계에 대한 그의 무모할 정도로 충동적인 애정이, 기계비평가가 되기 전 사진과 이미지 비평으로 닦인 그의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함 없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운동장을 넘어, 광장으로

스스로 ‘기계비평가’라 칭하며 『기계비평』을 출간한 지 10여 년, 이영준은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그간 나를 ‘사진 비평가’나 심지어는 ‘미술 비평가’로 소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기계비평가’로 소개한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러나 한국 인문학계에 끼친 『기계비평』의 영향은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후 그가 스스로 쓰거나 기여한 출간물, 전시 등을 제외하더라도, 2015년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에 개설된 ‘기계비평’ 강의를 필두로, 대중서사학회 주최로 열린 ‘기계비평’ 심포지엄 등에서 보듯 기계비평은 점차 학술 제도권 내부로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임태훈, 오영진, 강부원 등 그의 비평에 공감한 후속 연구자들의 노력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기계비평』과 함께 발간된 『기계비평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기계비평에 공명하고 활동한 임태훈이 주도해 펴낸 책이다. “2006년에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이란 책을 냈을 때 내 생각은 나만의 작은 놀이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계라는 나만의 장난감을 가지고 나의 놀이 방식으로 노는 작은 방 같은 것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니까 그 놀이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의 장난감과 놀이 방식을 재미있어 했다”는 이영준의 말처럼, 어느덧 놀이터에서 운동장으로 확장된 기계비평의 장을 실감할 수 있는 저작이다.

그러나 『기계비평들』은 『기계비평』과 그 결이 다르다. 물론 이는 『기계비평』이 출간된 지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달라진 테크놀로지와 기계들의 풍경 차이에서 기인한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계비평들』의 필자들이 바라본 2010년대 한국 기계 문화의 풍경은 더 이상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호부터 구의역 스크린도어,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까지.... 이 책은 2010년대 끝자락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계들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위기에 처한 기계를 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삶과 세계를 빼꼭히 채운 기계와 기계들의 질서를 궁구하여 더 나은 삶의 실천에 닿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기계비평은 더욱 실천적인 지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계비평이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시민들 위한 실천적인 공부법이 되기 위해서는, 운동장을 넘어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서 『기계비평』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발췌

2006년에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이란 책을 냈을 때 내 생각은 나만의 작은 놀이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계라는 나만의 장난감을 가지고 나의 놀이 방식으로 노는 작은 방 같은 것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니까 그 놀이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의 장난감과 놀이 방식을 재미있어 했다. 그들 중 미디어 비평가 임태훈은 가장 열성적으로 기계비평을 추구했고 이 책의 복간본 출간을 제안하고 추진했다. 10년 전의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니 부끄럽기만 하지만 있는 그대로 다시 내기로 했다. 그 책을 그대로 다시 내는 것은 책이 잘나서가 아니라 2006년의 출간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고 2019년의 복간본을 중간 점검 지점으로 삼자는 심산이리라. (5쪽)

사실 그간 기계와 지식은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님에도 서로 너무 소원했었다. 기계와 지식이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은 기계에 딸려오는 매뉴얼의 양만 봐도 알 수 있다. KTX의 매뉴얼은 1만 3000쪽에 이른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의 매뉴얼을 다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VCR이나 디지털텔레비전의 매뉴얼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정해놓은 지식에다가, 사용자가 쓸어 담아놓은 지식들, 나름대로 익힌 노하우들, 후대에 역사가가 엉뚱하게 해석한 지식들, 오해들, 곡해들까지 다 합치면 기계란 엄청난 지식의 지층이다. 그걸 파헤치는 고고학이 기계비평이다. (33쪽)

한국 철도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큰 분열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에도 없는 고속철도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지만 제대로 된 철도 박물관 하나 없는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철도의 한쪽 끝은 끝없는 첨단의 미래를 향하고 있고, 또 한쪽 끝은 제대로 기억도 되지 않는 과거에 닿아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과거에 대한 성찰이나 회고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에서 테크놀로지 발전의 양상이다.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불연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 불연속성에서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앞으로 많은 역사가들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145쪽)

결국 ‘한국에서 항공기 이미지의 작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이리저리 조사해본 결과 나온 결론은 한국에는 항공기 이미지는 없다는 것이다. 안양 우리 집 상공에는 항상 김포공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항공기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그들의 망막에는 항공기의 이미지는 비치지 않는다. 그들은 항공기 여행에 대해서는 값이 싸다느니 비싸다느니, 어느 항공이 서비스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말이 많지만, 이번에 미국 갈 때 보잉777을 타고 갔는데 동체의 꼬리 끝에 달린 보조터빈의 형태가 보잉747과 달라서 흥미로웠다든가 날개 끝에 윙릿(winglet)이 없어서 허전했다든가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190-191쪽)

해상운송의 현황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사실 지식인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부산항의 북항이 일반인이 들어갈 수도, 볼 수도 없는 곳인 것처럼, 해상운송의 많은 부분은 일반인에게는 표상되지도, 접근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런 시선의 금제(interdiction)만이 아닌, 작동의 비가시성(invisibility of operation)이라는 좀 더 크고 다른 주제가 연관되어 있다. 세큘라는 바다의 사라짐, 혹은 보이지 않음(invisibility of the sea)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순환은 점점 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경험을 간편한 패키지로 축소시켜버리는 오늘날의 소비자본주의에서 상품의 생산자들이 보여주는 건 기계의 작동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일 뿐이다. (244-245쪽)

사람들은 선풍기가 사람을 속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풍기는 어떠한 진술도 하지 않으면서 바람만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풍기가 사람을 속이는 이유는 바람을 내보낸다는 바로 그 지점을 통해서다. 선풍기는 기계로 만든 바람을 내보내면서 마치 자연풍인 것처럼 꾸며서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선풍기의 바람은 ‘진짜’ 자연풍과는 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어수룩하다. 더 이상 선풍기의 바람에 속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풍기는 본의 아니게 진실의 기계가 된다. 즉 선풍기의 바람에는 어떤 신화도 없는 것이다. 결국 선풍기는 거짓말을 할 능력이 없다.(315쪽)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장발달 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로 나누듯이, 대부분의 인간의 성장 발달에는 기계기(machinic stage)라는 단계가 있다. 물론 기계기라는 말은 누구도 정식화해서 한 말이 아니다. 기계기란 기계의 효용이나 매력이 인간의 심리적, 신체적 존재 속에 각인되어 인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 기간을 말한다. 내가 기계비평가가 된 것은, 결국은 기계기 때 내 안에 들어선 기계 애호가 어떻게 내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쳐 발현되었다가 억압되고, 그러다가 잠복했다가 다른 계기를 만나 다시 형태를 바꿔서 발현되는가 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321쪽)


차례

복간에 부쳐: 기계비평 10년
초판 서문: 기계비평이라는 것, 그 낯설고도 특수한 담론

비평가의 항해 일지
너무 빠르다! 우리 시대의 속도에 대한 성찰
디젤기관차의 풍경
KTX의 속도미와 죽음감
추억의 비행기에서 기만의 테크놀로지까지: 항공기 이미지의 변천사
보이는 부산항과 보이지 않는 부산항
KLM 아카이브 조사 연구 일지
사진이 과학의 증거가 되는 불가사의한 정황
테크놀로지의 배신

에필로그: 기계기의 형성과 부침, 내가 기계비평가가 되기까지
참고 문헌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약력


지은이

이영준은 기계비평가이자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사랑하는 그는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업이다.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재봉틀에서부터 첨단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구조와 재료로 돼 있으면서 뭔가 작동하는 물건에는 다 관심이 많다. 원래 사진 비평가였던 그는 기계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설명해보고자 기계비평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 (2012), 『조춘만의 중공업』 (공저, 2014),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2016),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공저,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사진 비평에 대한 책(『비평의 눈초리』, 2008)과 이미지 비평에 대한 책(『이미지 비평의 광명세상』, 2012)도 썼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1999), 『서양식 공간예절』(2007), 『xyZ City』(2010), 2010 서울사진축제, 『김한용—소비자의 탄생』(2011), 『우주생활』(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표지 사진

Traction Drive Hardware In The Machine Shop, 1979, Photographer: Martin Brown
catalog.archives.gov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 임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