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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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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

전현우

『거대도시 서울 철도』는 제목 그대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둘러싸고 전국의 도시로 뻗어 있는 철도를 ‘백과전서’처럼 다룬 책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철도를 역사적, 공학적, 제도적, 정책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질적’으로 다룬다. 일반 대중에게 철도는 그저 대중 교통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 특별한 관심거리가 아니다.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열차가 지연되거나 사고가 날 때, 요금이 오를 때, 혹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가치를 올려줄 때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교통의 세계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철도가 가지는 의미가 그 이상임을 밝힌다. “속도와 거리라는 작은 실마리에서 시작해 기후위기와 거대도시의 미래까지, 마치 셜록 홈즈처럼 철도를 둘러싼 실타래를 풀어 나간다.”(이정모)

전 세계 50개 거대도시 선발전, 그리고 ‘철도개발지수’

이 책의 거대한 야심은, 전 세계 거대도시 50개의 철도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그에 점수를 매겨 순위를 부여한 1장에서부터 이미 드러난다. 런던, 도쿄, 파리 등 전통적인 철도 강국들의 거대도시 철도는 물론, 자동차와의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미국 거대도시의 철도, 막대한 투자로 신흥 철도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거대도시 철도, 몰려드는 막대한 인구가 가하는 압력을 묵묵히 지탱하고 있는 인도의 거대도시 철도, 그 밖에 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를 망라한 지역에서 세계 도시 인구의 분포와 그 중요도를 감안해 대표 도시 50개를 선발하고, 그 도시들의 철도를 분석한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함께, 인구 1000만 명이라는 기준치보다는 인구가 적지만 한국에서 발간되는 책임을 고려해 부산이 포함되었다. 결과부터 밝히면 서울은 총점 41.2점, 전체 순위 22위였으며, 부산은 30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거대도시 가운데 부산이 생각보다 순위가 높다고 여길 독자가 있겠지만 39위(리우) 이후의 도시들은 철도 투자가 극히 미약한 ‘정체 그룹’이며 44위(카라치) 이하는 거대도시의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철도 투자는 사실상 포기한 도시들이라는 점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철도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진 서울조차도 철도 ‘추격 그룹’의 중하위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전 세계 인구 1000만 이상의 거대도시들 가운데서도 모든 면에서 수준 높고 정교한 철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가 얼마나 희귀한지, 나아가 미래의 철도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1부 ‘교통의 세계와 철도’는 앞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즉 철도라는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을 다룬다.

표류하는 거대한 병목, 지연과 불만의 철도

3장 「서울 지역 철도망의 오늘과 어제」부터 4장 「전국망, 표류하는 거대한 병목」을 거쳐 5장 「광역망, 지연과 불만의 철도」에 이르는 3개 장은 구체적으로 서울 지역을 둘러싼 철도망을 살펴보는 지점이다. 먼저 현재의 전국망, 광역망, 도시망 철도의 상황을 개괄하고, 이어서 과거 한국 철도가 걸어온 역사를 두 시기로 나누어 살핀다. 즉 경인선이 개통한 1899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는 10년 단위로, 1968년 11월 29일 서울시가 70여 년간 운행해 온 노면전차를 전격 폐선한 때부터 2019년까지는 5년 단위로 촘촘히 쪼개 현재의 철도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서술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철도 형성사를 살피며 저자는 정설로 받아들여져 온 제국주의 철도 논제, 즉 현재 한국 철도망의 구조는 일본 제국주의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논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다음처럼 말한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 한국 철도 전국망과 수도권 광역망의 구조는 설사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지 못했더라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본다. (...) 당시 한국 철도가 일제 침략의 도구로 작동하는 모습은, 철도망 건설 과정의 폭압성, 구체적인 철도 운용에서의 한인 차별, 당시 수송의 흐름 등에서 찾아야 하며, 철도망으로 인해 발생한 지리적 구조에서 찾기는 어렵다.”

해방 이후 형성된 철도망은 잘 알려졌듯 한국의 경제 개발과 그에 따른 서울 권역 재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강남과 신도시 개발을 따라 당시의 정책 입안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유형화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탐색은 실제 대지를 달리는 철도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제안하기에 앞서, 그 현실적 조건을 살피기 위함이다. “서울 거대도시 철도망의 여러 특징이 대체 어떤 변천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또 이들의 모습을 결정한 역사적 변수는 무엇이었는지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제안이라면, 지리적·공학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더라도 도시의 역사적 미로, 대지의 완강한 저항을 뚫지 못하고 좌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4장과 5장에서는 전국망과 광역망의 모습을 노선별, 권역별로 나누어 아주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살핀다. 지난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어온 경부1선의 병목, 중앙선의 빈약한 용량, 청량리역의 미약한 규모, 광역망의 빈틈과 불만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 도지사 핵심 공약으로 제기된 이래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2020년 현재 개별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GTX를 둘러싼 논의까지, 서울과 수도권 철도망의 핵심 쟁점을 파헤친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6장이다. 1장에서 전 세계 거대도시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석은, 그저 준비 운동에 불과하다. 거대도시 서울을 둘러싸고 저자가 제안하는 총 946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도망 계획은, 한국 철도망의 모습을 뒤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전국망 처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선, 광역망의 유기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선, 수도권을 우회하거나 충청권과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한 노선 등, 저자는 속도와 거리에 따라 각 철도망이 행해야 할 역할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촘촘히 엮어, 서울이라는 심장에서 출발한 열차들이 각자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달릴 튼튼한 혈관을 그려낸다.

이들 철도망 계획은 철도를 주축으로 대중교통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거대도시 중심부와 자동차가 중심이 된 수도권으로 이분화된, 소위 ‘이중 교통 환경’을 자동차 이후의 시대에 맞춰 재편하는 한편, 향후 북한 철도, 나아가 동북아시아 철도망과의 연결에 대비하는 폭넓은 시야를 제시한다. 너무 먼 미래까지 섣불리 재단한다고 보는 이들에게는, 건설과 변형이 비교적 용이한 도로와 달리 철도에는 수십 년 뒤를 내다보는 시야가 필수적이며, 뚜렷한 대책 없이 “현존하는 단 한 개의 복선만으로 서울역을 ‘유라시아 철도 시발역’으로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전망은 현 서울역과 경의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무시한 채 내뱉는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혀 둔다.

철도라는 사회계약

물론 저자가 제안하는 철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높은 산이 있다. 바로 2040년까지 계획한 철도망 건설에 소요될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다. 저자는 6장 마지막 부분을 할애하여 이 문제를 다루는 한편, 7장 전체에 걸쳐 재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사실 “오늘날, 전 세계 상당수 지역에서 철도망에 대한 투자는 돈을 버리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세계 각국의 정부는 철도망에 누구도 갚을 의무가 없는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철도 투자의 대부분은 열차의 운행과 함께 마모되어 사라진다. 민간 여객 사업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일본조차도 국철 민영화 당시의 막대한 부채 탕감, 최근의 건설 보조금을 감안하면 이런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철도에 대한 ‘돈을 버리는 일에 가까운’ 투자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우선 120년에 걸친 한국 철도의 역사를 재무적 국면에서 네 개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역사적인 시야를 갖추고 현재 철도 투자가 가진 사회적 성격을 분석한다. 특히 1984년부터 2019년까지, 즉 한국 철도가 재무적으로 파국을 맞았다가 부흥하기까지 정부의 역할을 세밀히 살핀다. 교통시설특별회계를 비롯한 세입세출 법령의 변화, 각 시기별 교통세 투자 내역,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분석함으로써 과연 철도에 귀중한 정부 재정을 투자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러 각도에서 냉철히 바라보고, 미래의 철도 재정을 위해 제언한다. “유류세에 기반하여 이뤄져 왔던 지난 30년간의 투자 제도는 이제 30년 내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개편될 것이고(전기차 기술의 압력 덕에) 또한 개편되어야만 한다는 것(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이 돌이키기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하면, 철도를 하나의 사회계약으로 바라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이 책은 일반 대중을 넘어 정책 입안자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미래의 교통

인류와 함께한 지 200년이 지난 교통수단인 철도는, 종종 한물 간 교통수단으로 취급받곤 한다. 실제로 20세기 중반 이후 자동차화의 물결과 함께 철도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문 앞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와, 먼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항공기 앞에서 철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자율 주행’이라는 장밋빛 예언은 철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그러나 저자의 논의에 따르면, 기술 발전 및 자율 주행이 던지는 미래의 전망 속에는 따져봐야 할 중대한 문제들이 여럿 숨어 있다. 특히 이것이 몰고 올 소위 ‘두 번째 자동차화’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가속하는 페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자율 주행이라는 장밋빛 예언과 동반하는, 기후위기라는 경고는 철도의 미래를 정반대로 예견한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섭씨 2도’, 혹은 그 미만으로 억제하기 위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하는 데 철도는 다른 모든 육상 교통수단을 압도하는 힘을 보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량 면에서 철도를 대체할 수단은 없으며, “단순히 이동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해방과 인간 개발에만 주목하지 않고,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훨씬 더 효율적이고 형평성 있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과제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철도는 사실상 유일한 답이다.”

나아가 저자는 재정 마련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국제에너지기구의 ‘섭씨 2도’ 시나리오의 교통 부분 목표가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할지, 즉 전 세계에 걸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설되어야 할 철도망의 규모는 물론 그것을 어떻게 각 국가별로 담당해야 할지 세부적인 문제까지 과감하게 파고든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자문한다. “왜 철도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가.” 거대도시 서울을 둘러싼 철도를 집중해 다루며, “과거·현재·미래는 물론이고, 서울·한국·세계, 기술·경영·정책 등을 종횡으로 누비며”(정재정) 단순히 철도가 중요다고 역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에 입각해 실제로 그러한지 세심하게 따지는 이 책은 분야를 막론하고 연구자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발췌

[전 세계 50개 거대도시 중] 서울은 총점 41.2점, 전체 순위 22위로 추격 그룹의 중하위 정도 위치에 있다. 또한 서울의 앞뒤로는 상하이, 뉴욕, 센양, 충칭이 자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중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에 위치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반가운 소식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여객 철도는 20세기 중반 이후 지금껏 쇠락의 길을 걸어 왔다. 도시별 지도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아도, 뉴욕은 허드슨강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허술한 망으로 뉴저지 방면과 연결되어 있을 따름이다. 미국 최고점을 기록한 시카고 철도 역시 방대한 망 곳곳에 평면교차와 병목 구간이 도사리고 있다. 상하이, 충칭 역시, 기존 철도망이 빈약한 데다 새로 건설한 고속철도 역도 도심지에서 거리가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약점을 지닌 도시들이다. 센양은 아직 도시망이 빈약하다. 변수가 조금 달라지면 볼 수 없을 배열임에도, 이렇듯 중요한 약점을 가진 도시 사이에 서울이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은 서울 거대도시권 철도의 현 주소를 비춰 주는 거울처럼 보인다.

서울 지역 철도망의 약점을 전국망과 광역망 수송과 연관된 지표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거대도시는 세계 어디에서나 그 자체에서만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니다. 거대도시는 주변의 대도시, 그리고 그 대도시 주변의 중소도시 모두에게 일종의 상위 중심지고, 또 바로 그래서 거대도시가 된 것이다. 전국망과 광역망 철도는 이런 중심지 기능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거대도시의 여러 서비스와 혁신을 그 바깥으로 전달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서울 지역 철도망의 약점은 철도가 이런 기능을 원활히 발휘하려면 꼭 필요한 지점에서, 즉 전국망과 광역망에서 주로 확인된다.

모두가 서울 거대도시권의 철도망이 최선의 철도망이 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또는 현실의 압력과 주변 여건 덕에, 그런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될 구체적인 검토 속에서 드러나겠지만,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주어진 지리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회색 지대에 서 있는 철도망을 조금이라도 이 상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만드는 일, 그리고 최악의 방향으로 잘못 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뿐이다. 이런 작업을 위한 기능적 분석과 제안은 현 망의 형성사, 그리고 그 위에서 생겨난 오늘의 쟁점을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물론 철도 산학계는 수도권 전국망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지 않았고, 연구 역시 계속해서 누적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논의와 연구가 대중이나 철도 주변의 행위자들에게 얼마나 다가갔는지는 의문이다. 차근차근 설명하면 누구나 충분히 그 성격과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서울 지역 전국망의 병목이지만, 한국 사회 전반은 그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철도망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세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커녕, 병목을 악화시켜 철도망의 유기성과 유연성을 악화시킬 것이 분명한 철도 지하화 요구만이 정치권과 지방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을 뿐이다.

물론 수도권 광역망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 버릴 미래 기술은 분명 언젠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GTX는 그런 기술적 대안은 아니다. ‘환승·접근 저항’이라는 변수를 여기서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학계는 GTX의 결정적인 난점이 이 부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GTX 노선들은 이 문제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하고 중요한 약점을 드러냈다. (...) 고속화와 대심도화, 그리고 별도 선로 구축을 강조하는 계획의 방향이 GTX 계획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망을 건설하기 위해 이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망의 유기성 강화’라는 요소다. 결국 GTX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지적의 초점은 이렇다. 별도 사업자를 설정하기 위해 생긴 여러 문제들이 수서역과 수서평택고속선을 전국망으로서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데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음에도 이런 문제는 대체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중들은 와이파이나 콘센트에 반응했을 뿐, 이 회사가 고속선 영업 면허만 취득한 덕에 전라·경전·동해선에는 법적으로 열차를 운행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 이들 노선의 KTX나 여타 노선의 새마을호 또는 무궁화호와 환승을 위해서는 승차권을 별도 발행해야 하며 환승 할인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모바일 승차권 구매를 별도의 앱으로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내버스나 도시·광역철도 사이의 환승이 전국적으로 상식이 된 나라에서, 이처럼 유기적이지 못한 운영 사업자에게 비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 상당수 지역에서 철도망에 대한 투자는 돈을 버리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세계 각국의 정부는 철도망에 누구도 갚을 의무가 없는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 승객으로서는 이런 구조가 아주 반가울 것이다. 수송 서비스를 매우 싼 값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도를 산업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상황은 아주 기형적이다. 경제의 다른 부분에서 유래한 대규모의 보조금을 철도에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오늘날의 철도는 산업으로서의 자생력이 없다. 정말로 철도에 이런 대량의 보조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번 장에서 나는 다시금 교통의 세계 전체를 시야에 넣고, 하나의 장밋빛 예언과 하나의 파멸적 경고를 대조하여 21세기 중후반의 철도가 교통의 세계 속에서 어떤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지 살피려 한다. 장밋빛 예언의 핵심에는 자율 주행차를 비롯한 이동 수단의 무한정한 확대가 있다. 자율 주행차의 등장은 차량 운전 비용을 크게 감소시켜 자동차를 지금보다도 훨씬 더 유연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이고, 항공은 개도국 시민들에게도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되면서 국제 교류의 범위를 넓힐 것이다. 파멸적 경고의 핵심에는 기후위기가 있다. 날로 심화되는 기후위기는 수송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량을 크게 줄이지 않으면 기상 현상이 한층 흉포해지고 인류 문명의 기반이 되었던 안정적인 해안선과 예측 가능한 기후가 사라져 문명의 토대가 침식되어 파괴될지 모른다는 경고를 함축한다.

이렇게 두 번째 자동차화가 현실에 구현되는 동안 늘어갈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가운데 오늘날 가장 중대한 것은 에너지 소비와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일 것이다. 인류는 최종 소비 에너지의 29%를 수송에 소모하고 있으며, 여기서 나온 탄소 배출량 가운데 수송에서 기인하는 비율은 25% 수준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는 전체 수송 에너지 소비량의 75%, 탄소 배출량의 73%를 점유한다. 특히 소형 차량은 전체 교통 소비량·배출량의 절반을 점유한다. 이는 다른 모든 수송 수단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25% 가운데 수운이 10%, 항공이 10%를 차지하는 한편, 나머지 미약한 값(2%)이 철도의 몫이다.

사명이라는 말이 너무 무거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철도가 20세기 후반의 위기를 넘기고 21세기에 다시 부흥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런 무거운 말이야말로 오히려 오늘날 철도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 준다고 할 만하다. 오늘의 철도는, 교통의 세계를 놓고 온 사회가 맺은 사회계약 그 자체다. 자동차와 항공이 주도하는 21세기 초 교통의 세계 속에서, 철도가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공적 자원을 투입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사회계약이 없었다면 철도가 살아남아 있는 나라와 도시 역시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철도는 종합 과학이자 복합 산업이다.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는 해박한 식견으로 철도의 총체적 성격을 모두 짚어 내고 있는 백과전서와 같은 책이다. 철도의 과거 · 현재 · 미래는 물론이고, 서울 · 한국 · 세계, 기술 · 경영 · 정책 등을 종횡으로 누비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철도의 초보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철도를 새롭게 인식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정재정(광주과학기술원 초빙석학교수)

드디어 한국에도 철도에 대해 심도 깊으면서도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등장했다. 모든 장들에 전현우의 땀방울이 깊게 스며들어 있음을 독자들도 알 수 있으리라. 개인적으로는 3부를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사회계약으로서의 철도는 곧 공공의 이익을 지탱하는 것으로 정부 역할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위기의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된 철도는 이제 과거의 교통수단이 아니라 미래를 책임질 인류의 친구이다. 전현우가 이끄는 철도의 세계에 올라타 색다른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의 아름다운 특권일 것이다.
―박흥수(기관사, 철도 저술가)

이 책에서 철도는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그려진다. 전현우는 수많은 자료들과 데이터들을 직접 정리하여 철도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생명을 얻고 있는지 자세하게 쓰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철도라는 것이 도시 구조와 지리와 엔지니어링이 얽혀서 생겨나는 생명체임을 알 수 있다. 이제껏 철도의 역사에 대한 책은 있었으나 그 시스템을 이렇게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분석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한국의 철도는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영준(기계비평가)

철도는 날개를 단 바퀴다. 산업혁명 이래 철도를 타고 퍼져 나간 인류의 산물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괴테가 예상한 것처럼 철도는 지구를 돌아 서둘러서 온 민족을 연결시켰다. 대한민국은 그리 넓지 않은 만큼 이런 연결이 아주 촘촘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현우는 속도와 거리라는 작은 실마리에서 시작해 기후위기와 거대도시의 미래까지, 마치 셜록 홈즈처럼 철도를 둘러싼 실타래를 풀어 나간다.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연결이 세상을 바꾼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이를 연결하는 교통은 인간 사회의 동맥이다.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교통은 어떤 모습일까? 최소의 면적으로 최대의 수송력을 제공하는 철도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이다.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량 면에서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한다. 풍부한 자료, 과학적 분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함께 담긴, 엄청난 역작이다.
―김범준(물리학자,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차례

서론: 발차를 기다리며

1부 교통의 세계와 철도

1장. 거대도시와 철도
1절. 분류의 무대: 거대도시
2절. 철도망의 기관 분류 1: 속도와 철도망의 층위
3절. 철도망의 기관 분류 2: 교통수단의 생존 지대, 골디락스 존
4절. 크리스탈러의 육각형, 중심지 체계와 철도
5절. 특권적 기관: 중심 착발역 또는 중앙역
6절. 세계 도시 인구와 대표 도시 선발
7절. 철도망 분해 1: 열차 착발 능력과 전국망
8절. 철도망 분해 2: 도시망의 능력
9절. 철도망 분해 3: 광역망과 시계
10절. 철도망 분해 4: 망의 유기성
11절. 거대도시 철도개발지수
12절. 추격 그룹의 함정, 그리고 서울 지역 철도망의 방향

2장. 용량과 저항, 몇 가지 기능적 변수들
1절. 선로 위의 낮잠
2절. 파크사이드역의 비극과 ‘록, 블록, 브레이크’
3절. 페일 세이프, 그리고 철도 안전 체계의 효과
4절. 기억할 변수 1: 선로용량
5절. 기억할 변수 2: 역의 용량
6절. 기억할 변수 3: 환승저항
7절. 철도망 전반의 기능적 덕목: 유기성과 유연성

2부 서울의 철도, 현 망부터 미래 계획까지

3장. 서울 지역 철도망의 오늘과 어제
1절. 서울 지역 철도의 현황
2절. 서울 지역 철도망 발생의 두 시기
3절. 일제 침략과 한국 철도: 1899~1945년
4절. 경제 개발과 한국 철도: 1968~2019년

4장. 전국망, 표류하는 거대한 병목
1절. 경부1선과 중앙선의 병목
2절. 정비되지 않은 노선들
3절. 전국망이 해결해야 할 문제

5장. 광역망, 지연과 불만의 철도
1절. 광역망의 빈틈과 불만
2절. GTX는 해결사일까?
3절. 철도망은 혼자 달리지 않는다

6장. 철도 도시 서울, 무엇을 할 것인가
1절. 다섯 동심원, 그리고 네 개의 속도
2절. 계획의 목적과 신규 투자의 네 유형
3절. 최대 동심원, 전국망
4절. 큰 동심원, 광역특급
5절. 중간 동심원, 광역급행
6절. 가장 작은 동심원, 도시망
7절. 영원한 숙제, 재정
8절. 선도 그룹을 넘어
9절. 한국 철도의 수송 총량 목표

3부 철도라는 사회계약

7장. 세금 위를 달리는 철도
1절. 예정된 재정적 파멸, 그리고 대응
2절. 한국 철도 120년, 네 개의 재무적 국면
3절. 정부의 역할 1: 파국에서 부흥까지, 1984~2019
4절. 정부의 역할 2: 효율과 형평 사이
5절. 미래 철도 재정을 위하여

8장. 예언과 경고, 자율 주행차의 도래와 기후위기의 습격
1절. 두 번째 자동차화에 대한 예언, 그리고 그 난점
2절. ‘섭씨 2도’ 시나리오와 철도의 힘
3절. 망치와 모루: 철도의 부흥과 함께 필요한 조치들
4절. 자동차화의 황혼, 그리고 철도라는 사회계약

보강

  1. 속도와 거리, 속도 경쟁의 풍경
  2. 크리스탈러의 변수와 현실의 중심지 체계
  3. 철도개발지수 재점검: 안정성, 그리고 거대도시의 번영과 철도
  4. 측정과 계획 사이: 선로용량, 그 이중적인 존재
  5. 철도 유보지와 망의 유연성
  6. 수도권 남부의 네 회랑, 그리고 철도
  7. 미래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위한 검토
  8. 대중교통 이탈률: 도시 규모, 성차, 그리고 대중교통
  9. 무엇이 철도 투자 확대를 가져왔나
  10. 수송분담률 지표와 철도
  11. 철도 국제주의를 위한 ‘페르미 추정’: ‘2도 미만’ 시나리오에 부쳐

사례 연구

  1. 취리히 중앙역과 규칙 시각표
  2. 신칸센과 경부1선
  3. 중국의 센양난역 투자

핵심 선구 연구

  1. 서울 시내 경부고속선 확보와 서울역· 용산역 확장
  2. 청량리역과 중앙2선 계획
  3. 삼성과 수서, 새로운 병목?
  4. 수인2복선화과 송도급행선

부록

  1. 용어 설명
  2. 거대도시 철도개발지수 개별지표 명세표
  3. 경부고속선 확대 이후의 가상 시각표
  4. 교통 부분의 구조 전환을 위한 세입 · 세출 시나리오, 2020~2060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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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전현우
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고실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역학의 철학』,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등을 번역했다. 2005년 이후 철도 현장과 데이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교통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 인천시청 웹진 아이뷰(i-view)를 비롯해 『확장 도시 인천』(공저), 『세 도시 이야기』(공저) 등에 철도를 둘러싼 교통의 세계를 다룬 글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철학과 물리학의 눈으로 교통을 바라보는 방법을 연구하는 한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으로 철학이 오늘날의 정교한 지적 분업 체계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