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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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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신 8
Ob.Scene 8

곽영빈, 김은희, 남승석, 로이스 응, 비자이 프라샤드, 서현석, 아다치 마사오, 유운성, 이고르 세브축, 이나라, 존 조스트, 크리스토퍼 코너리 지음 / 김신우, 박진철, 서현석, 이경후 옮김

『옵.신』은 무대(scene)로부터 벗어난(ob-) 것들을 다루는 다원 예술 저널이다. 오늘날의 예술 행위나 현상 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다각적인 관점을 모색하고 여러 대화 방식을 제안해 온 『옵.신』 8호의 이슈는 ‘1968년 5월’이다.

‘68년 5월’이라는 사건

“국내에서 서슴없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의 서술은 엄격함을 보인다. ‘68년 5월’이라는 표현으로 시간만을 지시하거나 기껏해야 ‘시위’ 또는 ‘봉기’라는 단어로 현장의 집단 에너지를 서술할 뿐,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은 유보한다. 과장된 해석은 ‘혁명’에 대한 갈망을 반증하는 걸까? ‘혁명’이란 무얼까? ‘68년 5월’의 진정한 의미는 ‘설명을 불허’함에 있을지 모른다. 쉽게 규정될 수 없는 사건.” (본문 5쪽)

2018년은 ‘1968년 5월’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옵.신』 8호는 때로 혁명이라 불렸던 사건, ‘68년 5월’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파리의 대학 내 집회로 촉발된 ‘68년 5월’은 변질된 사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타파하자는 외침과 함께하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이 결합한 시위는 과격했고 파업 규모가 수백만에 이르렀으며, 캠퍼스와 작업장을 점거한 대중은 토론을 거듭했다. 프랑스 역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던 ‘68년 5월’은 한 나라를 넘어 서구에서,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여러 분야로 확산되면서 의미 있는 사건이 되어 갔다.

“원형적 동기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의 파장은 오늘날 삶과 예술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본문 5쪽)
오늘날 ‘68년 5월’에 대한 토론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68년 5월’, 그리고

『옵.신』 8호는 ‘68년 5월’을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관점 아래 다각도로 조망한다. ‘68년 5월’이 서구 대학들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저항 운동을 넘어서서 전 세계적 탈식민화 과정의 일부로 작용해 온 경로. 1960년대 정치 담론의 중심에 있던 해방이라는 문제, 그리고 최근 정치적 집단행동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이 해방이 맞닥뜨리게 된 운명. ‘68년 5월’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잠시 보기는 했지만, 여성이 원하는 변화는 결국 남성이 군림하는 혁명으로부터는 비롯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여성 해방 운동. 1967년 홍콩에서 일어났던 급진 좌파의 폭동 이후 흘러온 홍콩 급진 정치의 역사. 사회 참여적이고 실험적이었던 구 유고슬라비아 영화감독 집단 블랙 필름의 작품들과 프락시스 그룹의 철학. “예술가들이 혁명가를 자처하던” “혁명적인 시기에 예술이 겪는 일”들을, 크리스 마커, 필립 가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장뤼크 고다르, 장 루슈 등 당시의 시대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다룬 영화감독들을 통해 들여다보기. 르네 비에네의 상황주의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를 둘러싼 전용의 계보 추적. 그리고 미국에 대한 이야기. ‘68년 5월’이라는 어제의 다양한 면모를 다양한 시각으로 드러내는 글들은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결코 밝지만은 않은 오늘을, 어쩌면 예정된 내일을, 우리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이끈다.
68년 5월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 디자인에 관한 주석

“작은 판형은 1968년 당시 중국 문화 혁명과 파리 학생 운동에서 모두 주요 물신으로 등장했던 ‘작은 붉은 책’, 마오쩌둥 어록에서 전유했다. 검은 지면은 본문에서 다루는 유고슬라비아 블랙 웨이브에서 필터를 얻어 적용한 결과다. 텅 빈 앞표지는 옵.신의 정체성을 이어가지만, 이번 호에는 책등에서도 문자 정보를 생략했다. 대신 책등을 채우는 사진은 연대의 상징으로서 1968년 파리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이 사슬처럼 맞잡은 손을 보여 준다.”
― 슬기와 민(https://www.sulki-min.com/wp/ob-scene-8-kr/)


발췌

1968년은 좌파의 두 가지 거대 서사에 질문이 던져진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가지란, 사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다. 사회 민주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진보 담론을 장악했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나 정치적 상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물질주의적이고 틀에 박힌 삶을 축성하는 ‘현 상태’의 유지에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연루되어 보였다. 사회 민주주의 정치학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여겨졌다. ‘68년 5월’ 세력이 보기에 그것은 시장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착취와 소외, 그리고 군주와 노예로 사회를 분할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본문 24쪽)

‘즉흥성’과 ‘즉각성’은 ‘5월’로 연상되는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다. 그것은 곧 느리고 연구되고 준비되고 잘 연습된 점진적 변화의 안티테제였다. 그것은 폭발이었고, 사회의 장벽에 난 균열이자 방어물, 분노의 외침, 휘갈겨 쓴 낙서, 거리의 돌과 불타는 자동차로 싸우는 즉흥적인 전투였다. (30쪽)

글로벌 1968은 멕시코와 일본의 사건들을 포함해 서구 대학들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저항 운동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 남아프리카와 파키스탄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학생 시위와 유사해 보이는 저항 운동들을 찾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1968’은 탈식민화 과정의 일부였다. 바로 이 점이 50년 전에 발생한 일을 더 깊이 고찰할 수 있는 프레임의 일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37쪽)

여성들에게 68년 5월의 중요성은 양날의 칼이었다. 68년 5월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바와 욕망하는 바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촉매제였다. 여성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잠시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남성이 군림하는 혁명으로부터 올 수 없으며, 혁명을 스스로 통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1970년 뱅센 대학의 한 여학생 집회에서 남학생들이 “권력은 남근의 끝에 있다”는 슬로건과 함께 훼방을 놓았을 때 이러한 자각은 강화되었다. (77쪽)

영화는 1968년 파리에 대한 대중의 집단적 기억에 이의를 제기한다. 어쩌면 민중의 혁명, 혁명이나 혁명적 시기에 관해 잘 알려진 대부분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무엇으로? 바로 몽타주로. 마커, 이 산만하고 조용한 여행자는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한 몽타주를 갱신하며 이 시기와 결부된 자기 자신의 기억과 욕망에 대해 다시 묻고, 다시 조직한다. 그리고 기억을 조직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다시 확인한다. 몽타주하고 있는 현재의 ‘나’의 시선과 과거의 시선이 대면하고 다시 대면하도록 하면서 영화는 역사의 기록, 역사에 대한 시선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115쪽)

글로벌 60년대를 통틀어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활동의 목표와 척도가 된 것은 바로 해방이었다. 민족 해방, 정신 해방, 성 해방, 경제 해방, 사회 해방, 욕망의 해방 등. 이들은 사장, 지주, 부모, 남성, 식민 지배자, 사회, 통치자, 자신의 성격, 체계(자본주의, 파시즘, 국가 사회주의 등)나 체제(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등)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다. 해방은 더 이상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동시대의 정치 현장에서 이 단어가 호소력을 잃어 가는 이유는 다양하며 복잡하다.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지역에서 해방은 흔히 개인의 욕망 및 그 실현이라는 문제와 연관되는데, 포스트 1960년대 시대에 이는 광범위하게 확장된 소비 사회를 대변하게 되었다. (150쪽)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는 「당수태권도」에 그저 새로운 자막 혹은 더빙을 입힌 영화만은 아니다.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와 「당수태권도」의 구성은 매우 상이하다. 「정도」와 「당수태권도」의 구성이 대동소이함은 앞서 밝힌 대로다. 그런데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의 경우 (정도 심의 대본에 있는 장면 번호를 기준으로) 장면 11까지는 「당수태권도」와 동일하지만, 이후 돌연 23으로 넘어가면서 원본 영화의 구성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가 「당수태권도」의 사운드트랙 부분만 바꿔 놓은 영화라고 하는 널리 퍼진 견해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즉 르네 비에네는 프롤레타리아와 관료주의자의 대결이라고 하는 플롯을 전개하기에 걸맞은 방식으로 「당수태권도」의 구성을 재조정하고 거기에 프랑스어 자막(추후에는 더빙)을 입힌 것이다. (339~40쪽)

마오쩌둥이 1966년에 시작한 문화 혁명의 심연에 놓인 중국으로부터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일본까지, 아르헨티나로부터 프랑스까지, 독일부터 멕시코까지, 1968년의 세상은 온통 발효되고 있는 듯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뒤로한 시대의 안정 상태와 제도적 장치들에 압박과 의문이 몰아쳤다. 온 세상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변화를 외쳤다. 동유럽에서는 소비에트 연방의 멍에 아래 불만의 임계점이 표면 바로 밑까지 차올랐고, 결국 프라하의 거리로 터져 나왔다. 서구 세계에서도 같은 압박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염되듯 퍼지며, 파리, 로마, 베를린, 포즈난, 프라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도 봉기가 일어났다. 엄청난 문화적, 정치적 파장이 퍼져 가며 모든 이들에게 위기감과 희망을 동시에 안겼다.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음악, 연극, 영화, 문학 등에도 그 기운이 미쳤다. 그것은 거대한 깨어남이었다. (454~5쪽)

닉슨이 선거에서 이겼고, 베트남 전쟁은 계속되었다. 1960년대로부터의 퇴각과 길고 긴 보수주의로의 표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로까지 이어지는 치명적인 부패와 조합주의의 전조였다. 메릴린은 시카고로 돌아가 오랫동안 사회·정치 활동을 이어 나갔고, 나는 캘리포니아, 오리건, 몬태나의 숲을 전전하며 7년 동안 은둔했다. 현재 메릴린은 시카고에서 정치 자문으로 일하고 있고, 나는 과묵한 아나키스트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467쪽)

결국 1968년 6월 선거에서 드골은 승리한다. 1981년에 미테랑 대통령이 선출되(고 68년 5월과 대치되는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까지 프랑스에서 우파 정권이 유지되었다. 이후 좌파는 과거 정체성의 그림자로 전락했고, 우파와 신자유주의는 더욱 강력해졌다. 68년 5월은 ‘놓쳐 버린 기회’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68년 5월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혁명의 환상의 최후였다. (474쪽)


차례

비자이 프라샤드
제국의 포석 아래

이나라
우리는 우리가 지금 찍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크리스 마커의 카메라 실천

김은희
사막을 걷는 가렐

크리스토퍼 코너리
해방의 변증법: 글로벌 1960년대와 현재

로이스 응
스탠리 위로 비친 붉은 태양, 센트럴 위로 비친 붉은 별

이고르 세브축
「초기작들」: 1968년 궤도의 유고슬라비아 영화에 접근하다

남승석
유고슬라비아 블랙 웨이브와 프락시스 그룹: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향한 예술과 철학의 인본주의적 접근

유운성
전용의 계보: 당수태권도는 변증법의 정도(正道)일 수 있는가?

아다치 마사오
고다르가 결코 쓰지 못한 증언

서현석
장 루슈가 남쪽으로 간 까닭은?

곽영빈
베르톨루치, 또는 허구를 구하기

존 조스트
1968, 시카고


참여자

곽영빈
미술 평론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논문 「한국 비애극의 기원」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최초의 국공립 미술관 평론상인 제1회 SeMA-하나 비평상을 수상했고, 코넬 칼리지, 서울대, 홍익대, 한예종 미술원 등에서 매체 미학과 영화, 현대 사진 이론에 대해 가르쳤다. 2016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2017년 송은미술대상전과 포스코 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심사를 맡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객원 교수다.

김성희
기획자로서 다양한 예술 형식과 관점을 소개, 제작해 왔다. 2007년 다원 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을 창설해 2013년까지 초대 감독을 맡았고, 국제현대무용제(MODAFE, 2002~5), 백남준아트센터 개막 축제 스테이션 2(200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초대 예술 감독(2013~6), 국립현대미술관 다원 예술 감독(2017~8)을 역임했다. 『미래 예술』(2016)의 공동 저자다.

김신우
페스티벌 봄, 부산국제영화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국립현대미술관 다원 예술 프로젝트에서 프로그래밍 어시스턴트 및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 밖에도 공연의 프로덕션 매니저,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은희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영화 이론 및 미학을 공부했고, 전주국제영화제(2003~4)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 「사물의 기억」, 「세 개의 멜로」, 「딱정벌레」를 제작, 연출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며 전시 『필립 가렐—찬란한 절망』, 『불확정성 원리』, 『요나스 메카스—찰나, 힐긋, 돌아보다』,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을 기획했다.

남승석
영화 연구자/영화감독. 철학, 컴퓨터 공학, 현대 예술, 영상학을 전공했으며, 전쟁, 인지 과학, 지도, 도시 이론과 관련된 학제적 영상 문화를 연구했다. 2002년부터 영화적 아틀라스, 감성의 지도 그리기의 일환으로 5대륙 5개 도시에서 영화를 찍는 ‘노마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장편 영화 세 편을 완성했다. 2017년 인터뷰 중심의 수행적 다큐멘터리 「하동채복: 두 사람의 노래」를 연출했다. 현재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성찰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로이스 응
Royce Ng. 홍콩에 거주하며 아시아의 근대사, 국제 교역, 정치 경제학 및 정치 미학을 다루는 디지털 미디어와 퍼포먼스 작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 중국의 제4산업혁명 및 아프리카계 중국인들의 연대에 관한 미래 배경의 (기술과 관계없는) 픽션을 구상하고 있다.

박진철
비판적 인문·사회 과학을 공부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리시올, 2018)이 있으며, 프레드릭 제임슨의 「단독성의 미학」(문학과 사회 117호) 등 다수의 논문을 번역했다.

비자이 프라샤드
Vijay Prashad. 1967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났고,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로 활동하며 자본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제3세계의 역사를 조명하는 등,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역사와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연구를 지속해 왔다. 25권의 저서 중 『갈색의 세계사』(2007),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2017), 『제3세계의 붉은 별』(2019) 등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서현석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도쿄, 요코하마 등에서 도시와 감각을 전경화하는 특정 장소 기반의 퍼포먼스를 연출했고, 아시아의 맥락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국가 정체성 형성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연작을 만들고 있다. 『미래 예술』(공저, 2016)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아다치 마사오
足立正生. 1939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비판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수 편의 다큐멘터리 및 핑크 영화를 만들었고, 1970년대에 적군에 가담해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참여했다. 1997년 레바논에서 체포되어 2000년에 본국으로 송환된 후, 2004년부터 다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요우미
由宓. 베이징에서 태어나 쾰른 미디어 아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고 있다. 퍼포먼스 철학 담론과 유라시아 유목 문화의 시공을 추적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그 과정으로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시아 포커스 프로그램 등에 큐레이터로 참여하였다.

유운성
영화 평론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2004~12) 및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2012~4)으로 일했다. 현재 영상 전문 비평지 『오큘로』의 공동 발행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 비평집 『유령과 파수꾼들』(2018)이 있다.

이경후
페스티벌 봄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일했고, 다양한 동시대 공연 예술 작품의 연출 통역을 맡아 왔다. 글과 사진으로 엮은 『a second chance: 눌변』의 저자다.

이고르 세브축
Igor Sevcuk. 197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바나루카에서 태어나 1990년대 이후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 거주해 왔다. 비디오, 텍스트, 판화 등을 다루거나 이들을 조합하는 공간 설치 작업을 해 왔다. 스스로를 재규정하는 시각적 혹은 텍스트를 표류하는 혼합된 주체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이나라
이미지 문화 연구자. 1990년대 한국에서 사회학, 미학을 공부하고 2000년대 프랑스에서 영상 미학을 공부했다. 현재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트랜스미디어 연구소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영화의 입장과 퇴장을 고민하고 있다.

존 조스트
Jon Jost. 1943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40여 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에 거주하며, 상업 영화의 분업 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이야기를 발굴하는 1인 체제의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현재 시칠리아에 살면서 미국 서북부를 기반으로 하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코너리
Christopher Connery.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 산타크루즈 세계 문학과 문화 연구 학과 교수이며, 초기 중국 제국의 문학과 지적 활동, 1960년대 전 지구적인 문화 운동, 자본주의 문화와 대양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텍스트의 제국: 중국 제국의 집필과 권위』(1998)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현재 상해 푸단(复旦)대학교 UC 유학 프로그램 디렉터로 재직하면서 상해의 사회 공간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구성

서현석

기획

김성희

편집

김뉘연, 요우미, 이고르 세브축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