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 호로스코프 외 / 시들, 풀피리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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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 호로스코프 외 / 시들, 풀피리 노래들
Echo’s Bones and Other Precipitates / Whoroscope / Poèmes suivi de mirlitonnades

사뮈엘 베케트의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 호로스코프 외 / 시들, 풀피리 노래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베케트가 작가로 데뷔하면서부터 생을 마감하며 펜을 놓게 될 때까지 영어와 프랑스어로 쓰고 옮긴 시들을 고루 엮은 책이다. 시들의 뒤에는 사뮈엘 베케트의 『시 선집』(페이버 앤드 페이버, 2009)을 편집한 데이비드 휘틀리, 베케트의 『시 전집』(페이버, 2012)을 편집한 숀 롤러와 존 필링,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된 베케트의 시집들을 번역한 에디트 푸르니에의 해설들을 참조하되 새로운 견해를 더한 번역가 김예령의 주해를 실었다.

시인 베케트

극작가 베케트, 소설가 베케트에 비해 시인 베케트는 생소하다. 그러나 베케트는 시를 통해 공식적으로 작가로 데뷔했고(호로스코프, 1930), 집필 언어를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전환할 때 그 가능성을 시를 통해 가늠해 보았고(1938–9년 쓰고 1946년 발표한 열두 편), 마지막을 시로 마무리했다(어떻게 말할까, 1989).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중요한 순간마다 시가 자리한 셈이다.
정작 베케트는 자신의 시를 대단치 않게 평가하곤 했다. 20대 시절 쓴 시들을 “아무 할 말도 없으면서 쓰고는 싶어 안달 난 풋내기의 무가치한 작업”이라 자평하며 그 시들에 넘쳐나는 자의식과 문학적, 예술적 현학을 가리켜 스스로 으스댄다고 일갈했고, 지나치게 잘 고르고 구성하는 바람에 실패한 시들이라고도 했었다.
그러나 베케트의 시는, 우선 베케트의 다른 작품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연구될 필요가 있다. 시에서 쓰인 모티프들이 희곡과 소설에서 거듭 변주되고 발전되기 때문이다. 또한 베케트의 후기 시들은 그가 끝까지 매달렸던 주제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단어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즉 베케트의 몇몇 시가 들려주는 목소리들은 작가 베케트가 남긴 뼈이고, 침전물들이다.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1934년, 파리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던 한 시인이 당시 여러 가지로 좌절을 겪고 있던 베케트에게 자비로 시를 출판해보라고 제안했다. 베케트는 1928년에서 1935년 초 사이에 쓴 시들 중 열세 편을 다듬어 보냈다. 연구자들은 그가 긴 시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쓴 시들에 한번에 쓰인 듯 일관된 인상과 유기적 구조를 부여하고자 이렇게 추렸을 것이라 본다.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은 1935년 12월 파리의 유로파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됐다. 시집의 제목 중 ‘에코의 뼈들’ 모티프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는 어느 날 나르키소스를 보고 반했으나, 그가 업신여기자 숲에 숨어들었다. 님프의 용모는 나날이 황폐해졌고 결국 목소리와 뼈만 남았는데, 그 뼈들은 돌과 같아 눈에 띄지 않았으며, 다만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초기 시들에서, 베케트는 시들의 오랜 형식을 다양하게 차용해 쓴다. 중세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던 노래 형식의 하나인 ‘에뉘에치(enueg, 탄식의 노래)’와 ‘알바(alba, 새벽 또는 아침의 노래)’ 등이 그것들이다. 한편 베케트가 학창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그리하여 생의 말년을 보낸 요양원에서까지 들추곤 했던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들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호로스코프 외

시 「호로스코프(Whoroscope)」는 베케트의 등단작으로, 그가 시인 자격으로 단독 출판한 첫 작품이다. 1930년 6월 무렵의 베케트는 파리 고등 사범학교의 영어 강사였지만, 10월에는 떠나야 했다. 그런데 파리의 디 아워즈 출판사가 ‘시간’을 주제로 100행 이내의 시 경연 대회를 주최했다는 사실을 작품 제출 마감일에 알게 됐다. 그는 밤새워 데카르트의 생애를 다룬 시를 써서 보냈다. 재기 넘치되 현학적이고 이상한 말장난투성이인 이 시는 1등을 차지했고, 1930년 9월 베케트가 직접 주를 단 소책자로 발간되었다. 시의 제목은 ‘horoscope(별점, 운명 풀이, ‘시간[horo-]의 관찰[-scope]’)’ 앞에 ‘whore(창녀)’를 더한 조어. 베케트는 이중적인 뉘앙스의 제목을 통해 시간과 운명, 그리고 이를 대하는 인간 의지의 희비극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한편 시 「어떻게 말할까(Comment dire)」는 베케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이 시는 1988년 10월 29일 프랑스어로 쓰였고, 1989년 4월 23일 베케트 자신이 이를 ‘무어라 말하나(What is the Word)’라는 제목 아래 영어로 번역해 완성했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어떤 그것’을 — 그런 것이 있다면 — 무어라고 말하나, 끊임없이 묻고 중단하고 더듬는 움직임과 더불어, 스스로를 시작점으로부터 떼어내고, 밀어내고, 늘여서, 펼치는 언어의 자기-발생 궤적이 그려진다. 시는 그 추동이 남기는 흔적, 비문(碑文).”(김예령)

시들, 풀피리 노래들

베케트는 프랑스어로 쓴 열두 편의 시들을 잡지 『레 탕 모데른』(1946년 11월)에 처음 발표했다. 그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인 1938–9년 파리에 머물며 지은 것들이다.
뒤이은 짧은 시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풀피리 노래들(mirlitonnades)’이다. ‘mirliton’은 갈대 따위로 만든 장난감 피리이고, ‘vers de mirliton’이라고 하면 저급하고 조악한 시를 일컫는다. ‘mirlitonnade’는 ‘mirliton’에 접미사 ‘-ade’(‘–로 만든 것’)를 접목한 베케트의 조어다. 그러므로 ‘풀피리 노래들’은 ‘엉터리 시들’, ‘시시한 노래들’ 등으로 불려도 무방하다. 베케트는 1976년부터 1980년경까지 아주 짧은 이 시들을 지었다. 이 ‘풀피리 노래들’은 간략한 형식 속에 베케트의 복잡한 언어유희와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다.


발췌

무언가 저기에
어디
저기 저쪽
저기 어디
바깥쪽
무엇
머리 그 밖엔 무엇도
무언가 저기에 바깥쪽 어딘가에
저것, 머리
(「무언가 저기에」 중, 71쪽)

고정된 머리
안팎으로 죽은 듯
그러다 찢기는
긴 정적
미미한 동요
한 눈 열리고
다시 정적
다시 감기고
(「두려움에 도리질」 중, 72쪽)

보기 —
얼핏 보기 —
얼핏 본다고 믿기 —
얼핏 본다고 믿으려고 하기 —
광기… 얼핏 본다고 믿으려고 하는… 무엇을 —
무엇을 —
어떻게 말할까 —
(「어떻게 말할까」 중, 124쪽)

들어라 저것들을
덧붙는 것을
말들이
말들에
말없이
발소리들이
발소리들에
하나 또
하나씩
(「풀피리 노래들」 중, 130쪽)


차례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호로스코프 외
시들, 풀피리 노래들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 – 89)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김예령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7대학에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등의 『숭고에 대하여 — 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 안느실비 슈프렌거의 『아귀』,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 — 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사뮈엘 베케트의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모리스 블랑쇼의 『지극히 높은 자』 등이 있다.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표지 사진

EH(김경태)는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전공했다. 「스트레이트—한국의 사진가 19명」,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등 여러 전시에 참여했으며,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와 『로잔 대성당 1505~2022』가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