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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교본
절판

전쟁교본
Kriegsfibel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배수아 옮김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브레히트는 망명길에 올랐다. 직접적인 계기는 나치가 좌파를 탄압하기 위해 날조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브레히트는 히틀러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과 그 비극적인 결말을 간파하고 있었다. 프라하와 빈, 파리를 거쳐 덴마크로 간 브레히트는 1939년까지 그곳에 머물며 파시즘에 맞서 작품 활동을 펼친다. 『전쟁교본』 역시 그의 덴마크 망명시절 태동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책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비롯한 아름다운 서정시로, 또 서사극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브레히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에 4행으로 시를 붙인 93편의 사진시가 실려 있다. (동독에서 발행된 초판에 실린 사진시는 69편이다. 추가된 자료는 개정판 때 덧붙여졌다.) 그는 사진과 시를 결합한 자신의 작업에 ‘포토에피그람(Fotoepigram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시간적으로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때로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12년 동안의 사건을 다룬다.

서둘러 요약하자면, 이 책은 몸소 전쟁을 겪고 있는 한 시인이, 망명지에서, 전쟁의 이미지에 주석을 달아 엮은 하나의 문학작품이자 역사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사진시집을 통해 사람들이 사진을 읽는 법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진실을 보는 법을 배우길 희망했다.

“속임수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시대라면, 사색하는 자는 자신이 읽고 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거나 들은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따라서 얘기해 본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나타난 진실하지 못한 진술을 진실한 것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올바르게 읽고 듣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브레히트, 「진실의 재구성」 중에서(1934년)

그는 사진이 스스로 말하기를 바라며 시를 적었다. 때로는 사진 속의 인물이 되어 1인칭으로 말하기도 하고, 도시와 같은 사진 속 대상을 의인화시켜 독자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때로는 사진 속의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직접 화자가 되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진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작가 브레히트이며, 우리는 또 다시 그것을 읽어 내야만 한다.

이 책을 구성하는, 그 ‘읽어야만’ 하는 요소는 모두 세 가지이다. 하나는 브레히트가 직접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인 사진이고, 또 하나는 거기에 덧붙인 4행시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진 속의 텍스트를 번역하거나 주해를 단 글이다. 이들은 모두, 따로 또 같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책 속에서 브레히트는 결코 단정 짓듯 말하지 않는다. 결국 진실의 재구성은 독자의 몫이다.


차례

서문 / 루스 베를라우

사진시 1~69

전쟁교본 부록
사진시 70~93
사진 해설
『전쟁교본』이 나오기까지 / 얀 크노프
개정판을 내며
역자 후기


지은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서사극의 창시자다. 1898년 2월 10일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뮌헨대학 의학부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했다. 1922년 「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 상을 받았으며, 1928년 초연한 「서푼짜리 오페라」가 인기를 끌며 대성공을 거뒀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교육극과 고리키의 작품을 각색한 「어머니」, 「도살장의 성 요한나」를 썼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로 망명하여 반파시즘 활동을 펼치며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 「카라르 부인의 소총」 등의 희곡을 집필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비롯한 많은 시를 발표했다. 1940년에는 핀란드로, 다시 1년 뒤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푼틸라 씨와 그의 하인 마티」 등을 집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활개를 치자 스위스를 거쳐 동독으로 이주했다. 1949년 아내이자 배우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 망명 중에 쓴 작품과 고전을 개작한 「가정교사」, 「북과 나팔」을 공연하게 된다. 자신의 연극 체계를 발전시켜 ‘변증법의 연극’을 창도하던 1956년 8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전쟁교본』이 출판된 이듬해였다.

세상을 떠나기 3주 전, 브레히트는 오일렌슈피겔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이 사진시집이 모든 도서관과 학교에 비치되어 사람들이 사진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러한 바람은 브레히트가 이 책의 후속작으로 계획했던 『평화교본(Friedensfibel)』을 위해 남긴 단 한 편의 시(뒤표지)에 담겨 있다.

옮긴이

배수아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랩소디 인 블루』, 『바람인형』, 『심야통신』, 『철수』, 『그 사람의 첫사랑』, 『부주의한 사랑』,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불안의 꽃』,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아홀로틀 로드킬』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